그런데 요즘 정부를 보면 오락실 두더지 게임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말한 ‘국민고통지수’가 커지자 정부가 ‘보이는 손’으로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어서다. 망치를 맞는 대상은 은행, 통신사, 정유사, 식품·주류업체 등 국민 체감 가격이 민감한 곳들이다.
가령 이런 거다. “라면값을 올려? 망치 받아라. 얍!” “대출금리를 올려? 오호라 망치질이 답이다!” 때리면 바로 해결되니 이보다 편할 수 없다. 과연 이렇게 단순한 문제일까.
경제학 이론만 놓고 보면 자원배분은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정부는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개입해 왔다. 로버트 슈팅거와 이몬 버틀러가 공동 저술한 ‘4000년에 걸친 임금 및 가격통제의 역사’라는 책에는 기원전 4세기 이집트에도 중앙정부가 곡물 가격을 규제했다는 사실이 나온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시장에서 팔리는 곡물 가격을 고정하자 이집트 농부들은 농장을 버렸고 3세기 말 경제 구조가 완전히 무너졌다.
현대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석유 가격을 통제했다. 정유업체들은 공급을 꺼렸고 석유 부족 사태가 빚어졌다. 임금과 물가를 90일간 동결하는 조치까지 내놨지만, 규제가 풀리자 물가는 더 폭등했다. 미국 뉴욕에서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정부가 임대료를 규제했다. 이는 주택 공급을 감소시키며 결국 주택난이 만성화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스웨덴의 경제학자 아사르 린드벡이 남긴 “폭격 없이 도시를 가장 효과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은 주택 임대료 통제”라는 말을 입증하는 사례다.
인류 역사 속에 등장하는 가격통제 정책은 사실 당대의 정치 권력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다. 물가상승의 책임을 공급자에게 돌려버리면 책임과 여론의 비판을 비껴갈 수 있어서다. 매번 실패하지만, 정부가 가격통제의 유혹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경제 부총리가 라면값을 지적하면서 내리라고 으름장을 놓고,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예금과 대출금리까지 일일이 간섭한다. 결국, 정부의 요구대로 가격(금리)은 조정된다. 좋은 의도로 개입한 정부는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착각할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대중들이 대체로 환호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 경제는 시차를 두고 복수를 한다. 지금처럼 한국 경제가 늪에 빠져 있을 때의 복수는 더욱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때 마구 퍼준 재정들은 곧 청구서가 돼 돌아온다. 취약차주들이 주로 이용하는 2금융권은 물론 은행권까지 연체율은 치솟고 있고 여기저기 끌어다 쓴 빚에 허덕이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되는 9월에는 부실화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뿅망치’로 은행들을 때려 틀어막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턱대고 시장에 맡기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적절한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면 그건 망치질이 아니라 유기적인 컨트롤이어야 한다.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뀐 건 아닌지 누군가는 다른 목소리로 지적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