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선 "대표연설문 작가 섭외에 국고 지출 온당한가" 지적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낭독한 연설문 초안을 외주 맡긴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초안은 현직 대통령실 참모의 측근이자 최근 정치컨설팅 업체를 창업한 A씨가 국민의힘 당대표실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 당대표실은 교섭단체 대표연설문 초안 작업의 경우 당의 범주 내 전문성 있는 외부 '작가'를 섭외하는 것이 비단 국민의힘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관례적으로 이뤄져 왔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김 대표는 지난달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앞두고 A씨에게 연설문 초안 작업을 맡겼다. 김 대표는 A씨에게 연설에서 강조하고 싶은 정치 현안과 적절한 문장 수위 등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후 초안을 바탕으로 수정·보완을 위한 6~7차례 당 고위관계자 회의, 김 대표의 검토 등을 거쳐 최종안을 마련했다는 것이 당대표실 설명이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직원들이 쓰기 어려운 장문의 연설문이기 때문에 전문성 있는 외부 작가에게 초안을 잡아달라고 요청드린 것"이라며 "당과 (결이) 다른 사람은 전혀 아니다. 당의 범주 안에 있고 우리 당 대표 연설문을 쓴 경험도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누구 추천인가'라는 질문에는 "모르겠다. 원고 회의에 갔더니 (A씨가) 나와 있었다"며 "김 대표가 알음알음 구했다고 생각하지, 누구에게 추천 받았냐고 묻진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김 대표만 용역을 줬다면 문제겠지만 정치권에서 관례적으로 그렇게 하던 것"이라며 "민주당도 그런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그런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연설문 ‘민간 외주’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심재철 자유한국당(옛 국민의힘) 의원은 총리실에 이 총리 연설문 담당 인력이 있음에도 민간인 신분의 방송작가가 연설문 작성에 12차례 참여해 자문료 명목으로 약 1000만 원을 받았다며 ‘예산 낭비’라고 비판한 바 있다.
앞서 2011년 미국 방문 중이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미 의회·상공회의소 연설문도 주미 한국대사관이 워싱턴 소재 연설문 작성 업체 '웨스트 윙 라이터스'에 의뢰해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여당 시절 원내대표 한 분이 작가를 붙여 메시지팀과 협업하게 한 적은 있다"면서도 "이재명 대표의 (6월 19일) 교섭단체 연설문은 외부 작가 없이 당직자로 구성된 메시지팀에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A씨가 김 대표와 가까운 대통령실 B 비서관의 측근인 만큼 당 일각에서는 B 비서관이 두 사람의 연결고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러한 해석과 관련해 A씨와 B 비서관은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A씨는 "(당에서) 추가 일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급박한 부탁으로 실무를 맡긴 했지만, 누가 추천했는지는 말할 수 없다"면서도 "B 비서관과는 무관하다. 김 대표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B 비서관은 "A는 글 잘 쓰는 것으로 우리 필드에서 유명하다. 내가 왜 추천하나"라며 "연설문으로 대표실과 교감할 일도 없다. 대표실에서 작가를 누구로 잡을지도 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대표실 관계자도 "김 대표가 B 비서관과 자주 소통하기는 하지만 연설문을 갖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는 확인이 안 된다"고 전했다.
당대표실에 따르면 김 대표의 연설문 초안 작업 비용은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에서 지출했고, 금액 규모는 수백만원대다.
때문에 집권여당이 대표 연설문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국고 보조금을 별도로 들여 외부 작가를 섭외하는 관례 등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치평론가인 이종훈 명지대 교수는 "당대표의 연설 내용을 더 충실하게 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해선 안 되는 일 또는 비도덕적인 일인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국고 보조금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온당하냐는 지적은 있을 수 있다. 여당이 대표 연설문조차 외부 컨설턴트 내지 작가에게 의존해야 할 정도로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국민에게) 인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