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남발…관리 주체 없어
명품도 방치하면 싸구려 전락해
바야흐로 K자 전성시대다. K-팝, K-엔터, K-드라마, K-콘텐츠, K-게임, K-스포츠, K-문화, K-푸드, K-패션, K-뷰티, K-의료, K-테크, K-배터리, K-원전K-조선, K-스타트업, K-중기, K-혁신성장, K-기업가정신, K-방산, K-주식, K-City 등. K가 붙은 글자들을 읽기만 해도 숨이 차다.
왜 요즘 이렇게 K자 단어가 유행하는가? K는 Korea의 첫머리 글자로 당연히 ‘한국’을 지칭한다. 그 의미는 ‘한국형’, ‘한국산’, ‘한류’를 뜻한다. 우리 한국만의 고유한 것이라는 표시다. K자를 많이 붙이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것이 특별하다고 내세우고 싶기 때문이다. 일종의 원산지효과(country of origin effect)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한국적인 것을 내세우는 것은 좋다. 과거에 우리가 미제, 일제, 독일제, 영국제 등처럼 다른 나라 상품을 부러워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 그들 못지않게 잘 만든다는 자부심의 표출이다. 그런데 이런 K자가 국가 상표인지 아니면 국가 브랜드인지 다소 애매하다. 상표란 단지 상품에 부착된 표딱지로 다른 상품과 구분하는 표시(mark)에 불과하다. 반면에, 브랜드는 상품의 의미와 개성을 상징하는 이름(name)이다.
학교에서는 학생에게 학번을 부여하며, 군대에서는 군인에게 군번을 붙여준다. 번호는 개인을 구별하는 표시일 뿐 어떤 의미도 없다. 하지만 이름은 다르다. 우리 각자의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상징하는 브랜드다.
지금은 브랜드 마케팅이 성행하여 상품 가치보다 브랜드 가치가 더 높아졌다. 명품을 생각해 보라. 백화점에서 오픈런 하며 거액을 주고 소유하기 위해 열광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다.
K자 브랜드의 기원은 K-팝에 있다. 1990년대 후반 아이돌 스타 그룹의 완벽한 안무와 무대연출로 부상한 K-팝은 한국적 음악 장르로 주목을 끌었다. 특히 2013년에 데뷔해 10년 동안 세계 무대를 누비며 수많은 수상기록과 앨범 순위 정상을 달성한 방탄소년단이 K-팝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런 K-팝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배우며 한류 문화를 받아들여 K-엔터, K-드라마, K-콘텐츠, K-푸드 등이 연이어 뜰 수 있었다.
일종의 브랜드 확장효과(brand extension effect)라 할 수 있다. 인기 유명 브랜드를 다른 신상품에도 적용하여 쉽게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 단어이건 무조건 K자를 붙여 사용해 지나치게 K브랜드를 남용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주로 정부나 언론이 K자 사용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외국에서 행사할 때마다 K자 제목을 달아 홍보한다. 특히 요즘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우리나라를 알리는 행사에 K자를 많이 붙인다. 원전, 방산처럼 정부 차원에서의 수출촉진 행사에도 K자를 사용한다. 언론은 한국적 사건이나 현상에 K자를 붙여 기사를 내보낸다. 그러다 보니 거의 매일같이 새로운 K자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브랜드도 자산이며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브랜드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닳아 해져 손상된다. 유명 브랜드를 수많은 상품에 붙였다가 브랜드 가치가 훼손된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다. 프랑스의 부티크 브랜드였던 피에르 가르뎅은 양말 손수건 우산 등에도 사용하는 바람에 지금은 싸구려 브랜드로 전락해 버렸다.
더욱 우려되는 현상은 최근 부정적 사건에도 K자를 붙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 바가지요금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일이 많아지면서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K-바가지’라는 조롱 어린 표현이 등장했다. 이러다가 나중엔 K-갑질, K-무질서, K-부패, K-빌라사기 등도 나타날 거다. 좋건 나쁘건 한국적인 것을 다 K자로 묶어 버리면 K는 더 이상 브랜드가 아니다.
브랜드는 주체가 있어야 관리가 된다.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공을 들인다. 명품 기업은 재고품을 할인해 팔기보다 불태워 버릴 정도로 엄격히 브랜드를 관리한다. 그런데 K자 브랜드는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 국가 브랜드라고 하지만 정부도 관심이 없다. 아니 정부가 브랜드 남용에 앞장서고 있다. K자 브랜드가 등록되어 법적 보호를 받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맘만 먹으면 갖다 붙일 수 있다. 이전에 잠깐 있었던 국가브랜드위원회와 같은 K브랜드위원회라도 만들어 관리해야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으면 K자는 반짝 유행에 그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