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양평고속도로’ 개설 추진 자체를 ‘전면 백지화’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야권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을 제기한 것에 초강수를 둔 셈인데요. 원 장관은 윤 대통령과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밝히며 인사 책임까지 각오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2017년부터 경기 하남시와 양평군을 잇는 서울-양펑 고속도로 사업을 추진했는데요. 이후 사업성 등을 고려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한 노선 외 2개 대안 노선이 새롭게 제시됐습니다. 국토부는 대안 노선 등에 대해 전략환경영향평가와 주민 설명회 등을 거쳐 최종 노선을 확정할 계획이었는데요.
하지만 예타 과정에서 빠졌던 노선들이 추가되면서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여기에 대안 노선의 종점 일대가 김 여사 일가 소유 토지로 드러나면서 의혹은 더욱 커졌습니다. 5월 8일 국토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기 위한 노선안을 공개하자 민주당이 종점인 강상면 인근에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토지가 있고, 노선 변경으로 건설비가 늘어난 점 등을 들어 국토부가 주민 모르게 종점을 변경해 김 여사 일가에게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파장이 일었습니다.
원 장관의 ‘전면 백지화’ 선언으로 서울에서 양평까지 1시간 30분~2시간 소요되던 차량 이동시간이 15분대로 단축될 것이란 기대도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됐고 경기 양평 지역사회에선 거센 반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야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양평고속도로 종점 이전 안 되면 사업 폐지라니, 내가 못 가지면 부숴버려”라며 정부·여당이 의혹 관련 진상 규명에 나선 게 아니라 사업 자체를 백지화 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원 장관이 야당의 공세에 이처럼 무기한 사업 중단을 선언하면서 향후 주민 불편과 지자체 반발 등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됩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양수리 일대 심각한 교통 정체난을 분산시키기 위해 2008년부터 추진된 사업입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은 2017년 1월 제1차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반영되면서 추진됐고 2021년 4월 예타 조사를 통과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3월부터 국토부는 타당성조사와 관계기관 협의 과정에서 예타안을 포함해 3개 노선을 검토, 올해 5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위한 노선으로 예타안과 함께 1개 대안을 추가로 공개했는데요.
문제는 예타 과정에서 빠졌던 노선들이 추가됐는데 여기에 대안 노선의 종점 일대가 김 여사 일가 소유 토지로 드러나면서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경기 하남시 감일동에서 양평균 양서면까지 27km를 잇는 왕복 4차로 도로로 총 사업비 규모는 1조769억 원입니다. 민주당은 대안 노선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윗선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데요.
국토부의 입장은 다릅니다. 국토부는 양평군에 먼저 대안 노선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양평군이 국토부에 건의한 3가지 노선 중 하나가 대안과 거의 동일했다고 설명합니다. 노선도 확정된 것이 아니고, 예타안과 대안을 놓고 주민 설명회 등을 거쳐 최종 결정을 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요. 대안이 예타안보다 교통여건 개선 등 사업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최종안 대상으로 포함시켰다는 것입니다.
예타안은 하남시~양평군 양서면으로 이어지지만 대안은 길이가 2km 연장돼 양평군 감상면으로 뚫리는데요. 종점을 양평군 양서면이 아닌 강상면으로 옮기고 나들목(IC) 1개를 추가 설치해 도로 길이를 2km 늘려 총 29km로 확장하는 방안입니다. 이 경우 사업비도 1조7695억 원에서 1조8661억 원으로 1000억 원가량 증가합니다. 고속도로 시점부(820억 원), 종점부(140억 원) 사업비는 증가하지만 이용 교통량은 하루 약 6000대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국토부는 교통여건 개선효과, 환경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대안이 타당한 것으로 인근 도로의 교통량을 하루 2100대 이상 더 많이 흡수해 두물머리 인근 교통정체 해소효과가 더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대안 노선에 따른 땅값 상승 등 특혜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대안의 종점부는 고속도로 통과구간인 분기점(JCT)으로 주변 땅값 상승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분기점은 나들목과 달리 고속도로끼리 직접 연결돼 외부에서 진출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섭니다. 오히려 고속도로 인접 지역은 나들목 주변이 아니면 소음, 매연 등으로 민원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종점 변경도 지난해 3월부터 진행된 타당성 평가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원 장관의 ‘전면 백지화’ 선언으로 매몰 비용은 용역 비용인 10억 원대일 것으로 국토부는 보고 있습니다. 공사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단계라 직접 손실이 크지는 않습니다. 올해 예산에는 설계비 25억 원 정도가 반영된 상태입니다. 다만 15년 ‘숙원 사업’인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큰 기대를 걸었던 양평 주민들은 이 도로가 주말 차량 정체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원 장관 발언 직후 김동연 경기지사와 전진선(국민의힘) 경기 양평군수가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양평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사업중단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데요. 지역의 이익 증진과 군민 의견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기존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정부 부처별 의견들을 절충해가야 한다는 것이 군의 입장입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전 군수는 6일 오후 5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적인 부분을 떠나 양평군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입니다. 노선변경은 어렵지만 설계변경은 얼마든지 가능한 만큼, 공청회나 실시설계 등의 남은 절차를 추진해 계획대로 사업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전 군수는 “추진과정도 확인하지 않고 고속도로의 IC와 JCT도 구분하지 못하고 이 지역에 대한 일고의 연고나 지역 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이 군민의 이익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일으키는 가짜 논란이 오늘과 같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향후 특정정당에서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에 대한 가짜 뉴스로 일체의 정치적 쟁점화하는 것을 중단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김동연 지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기도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방콕 출장 중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나 안타깝고 한심스럽다”고 비판했는데요. 김 지사는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경기 동부권 지역민들의 숙원이다. 교통 혼잡이 심한 국도 6호선과 수도권 제1 순환망 등 양평 지역 교통량을 분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다”면서 “양평군민의 절실함과 지역 사정도 모르는 장관의 말 한마디 때문에 7년간 진행되어 온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예산실장부터 경제부총리까지 하며 고속도로 등 SOC(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재원 배분을 숱하게 해온 제게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기간 준비한 정책을 장관의 감정적인 말 한마디로 바꾸는 것 자체가 ‘국정 난맥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양평군의회도 임시회 본회의를 열고 황선호(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전면 백지화 철회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결의안에는 “이 사업이 2021년 4월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양평군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는데 최근 특정 정당의 일방적인 주장에 휩싸여 사업이 지연되거나 좌초된 현 실태를 보면서 온 군민의 걱정이 원망으로 변했다”며 “수십년간 양평군민이 염원해 온 사업을 물거품으로 만든 특정 정당은 사과하고 책임성 있는 행동으로 사업 원상복구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사업 전면 백지화에 지역 사회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요. 양평군청 홈페이지와 온라인 카페 등에는 국토부의 일방적 결정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한 군민은 “양평군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는데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백지화 주장이 나왔다. 고속도로 노선 선정 특혜가 문제 된다면 주민투표를 실시해 주민들 의견에 따라 결정하자”며 양평군과 주민들은 청천벽력이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원 장관과 여당은 이례적으로 정책 논의가 아닌 ‘김건희 여사 고속도로 특혜 의혹’ 관련 당정협의회까지 열고 야권의 의혹 제기에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강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당정에 참석한 원 장관은 “민주당이 진실이 아닌 정치 공세 건수를 잡는 데만 관심이 있다. 민주당이 가짜뉴스로 있지도 않은 악마를 만들려는 시도를 구민들이 심판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이에 민주당은 원안 추진을 촉구하면서 진상규명 추진 등 강경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7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양평고속도로 원안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겠다. 국토교통부는 양평고속도로 백지화를 백지화하고 원안대로 추진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고속도로 종점이 김 여사 일가 소유의 땅으로 변경된 것과 관련한 5개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추진하기로 했는데요. △경제성 악화에도 종점을 변경한 경위 △종점 변경이 3개월 만에 추진된 경위 △교통정체 해소 효과가 미미한데도 종점 변경을 추진한 이유 △종점 변경 관련 국토부-양평군의 사전 논의 여부 △종점 변경 관련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개입 여부 등입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야당 간사인 최인호 민주당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음주 상임위 개최와 원 장관의 출석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민주당내 일부에선 원 장관에 대한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득구 민주당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의혹 진상규명 TF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개인적 생각임을 전제로 “백지화는 법적 절차가 필요한데 장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국가 법적 시스템을 무너트리는 행정독재에 대한 탄핵도 고민할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요.
이와 관련해 원 장관은 야당의 비판이 잇따르자 “대안 노선은 더불어민주당도 계속 주장해왔던 안”이라며 야당에 맞섰습니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주당 출신 군수, 지역협의회장 할 것 없이 현재 대안 노선 선상에 있는 강하IC 설치를 요구해왔다”면서 “2021년 예타 결과 후 노선 변경이 필요하다며 민주당 지역 인사들도 주장하고 홍보했다. 검색만 해봐도 바로 알 수 있다. 민주당 주장대로라면 2021년에 민주당도 김건희 여사에게 특혜를 주려 했다는 것인가”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야권에서 대안 노선이 김 여사 집안 토지를 지난다는 것은 원 장관이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원 장관은 “2022년 국정감사 당시 있었던 ‘토지형질변경’ 논의는 대안 노선과는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 참 집요하고 악질적”이라며 “아무리 진실을 밝혀도 이런 가짜뉴스와 터무니 없는 의혹 제기 때문에 도저히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고심 끝에 백지화 결정을 내린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은 지난 15년여간 양평 주민들의 숙원 사업으로 2017년부터는 국책사업으로 진행돼 왔는데요. 여야가 서로 탓을 하는 사이 결국 피해는 오랫동안 도로 개통을 요구해 온 지역 주민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게 됐습니다. 이제라도 정부와 여당은 정쟁은 멈추고 모두가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권력 개입 등 비리가 있었다면 엄단해야 할 것은 분명하며 야당도 합당한 근거 제시가 필요합니다. 극한 정쟁을 멈추고 정부는 성급한 백지화 대신 노선 변경 과정을 철저히 조사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의혹을 해소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