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역사는 늘 ‘과학’에 승리 안겼다

입력 2023-07-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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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野,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 선동'
광우병·사드 겪은 국민 현혹 안돼
미·호주 등도 '과학의 손' 들어줘

문답이 있다. 수질에 관한 문답이다. 이런 내용이다. “문=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답=전혀요. 문=당신은 이 물을 마십니까? 답=예. 문=언제든지요? 답=예.”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이 그제 떠난 뒤에도 그렇다. 하지만 수질 문답은 후쿠시마와 무관하다. 115년 전 미국 법정에서 이뤄진 문답이다.

뭔 사연일까. 1908년 뉴저지주 저지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회사가 곤경에 처했다. 장티푸스가 도진 것이다. 회사는 의사(존 릴) 조언에 따라 염소 소독을 했다. 시가 개입했다. 시민 건강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문답은 판사와 의사의 대화다. 릴은 “염소 소독이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쉽고 가장 저렴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언제든지 수돗물을 마신다”고도 했다.

물이 안전한지 논란이 일면 예나 지금이나 “마셔라”, “마신다”는 문답이 등장한다. 그로시도 방한 인터뷰에서 ‘오염수를 마셔서 안전성을 증명하겠다는 정치인·학자들이 있다’는 말에 “나도 마실 수 있다. 그 안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초청으로 그제 성사된 면담에서 예상보다 더 험한 말을 들은 것은.

한 일간지의 어제 1면 제목이 웅변적이다. ‘폭행 빼고 다 당한 IAEA 총장.’ 다른 신문은 ‘민주당 호통·시위·욕설’이란 제목을 달았다. 집권 경험이 있는 원내다수당이 유엔 산하 국제기구 총장을 초청해 모욕을 준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해가 불가능하진 않다. 공포 마케팅에 사활을 건 입장에선 “나도 마신다”는 언행이 그렇게 미울 수 없었을 테니까.

안전보다 안심이라고 한다. 멋진 말이다. 안전을 입증하는 백 마디 말보다 불안을 씻는 말 한마디가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마신다” 가 반복된다. 앞서 5월 영국 석학 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도 “당장 1L라도 마실 수 있다”고 했다. 115년 전 릴처럼.

그러나 우리사회에 통할지 말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뇌 송송 구멍 탁’ 구호가 난무한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도, 2017년 성주 사드 기지 논란 때도 경험칙은 똑같다. 단기적으론 통하지 않았다. 왜? 안심할 생각이 아예 없는 이들이 허다해서였다. 되레 안심하는 이가 많을까 봐 걱정이 태산인 이들이 수두룩했다. 공포 마케팅 전도사들이다.

전도사들은 6년 전 성주에서 춤추며 노래했다.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사드의 전자파는 싫어. 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싫어”라고. 광우병 괴담을 논박한 과학자들에겐 협박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도 유사할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부터 ‘독극물’ 같은 극언을 하고 있다. 공포 마케팅을 방해하는 전문가는 ‘돌팔이’로 몰아세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을 비롯해 음모론 전선에서 닳고 닳은 역전 노장들도 달려들어 힘을 보태고 있다. 안전보다 안심? 멋진 말이지만, 이 땅에서 통할지 여간 의문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공포 마케팅에 무릎을 꿇어야 하나? 예단은 삼갈 일이다. 우선 광우병, 사드의 학습효과가 어찌 작용할지부터 미지수다. 양치기 소년을 알아보는 눈 밝은 국민이 이미 많다. 또 중장기적으론 과학의 손이 올라간다는 점도 유념할 일이다.

미국 저지시 소송은 릴의 승리로 돌아갔다. 과학 저술가 매트 리들리는 신간 ‘혁신에 대한 모든 것’에서 “분수령이 됐다”고 했다. 지구촌이 상수도 염소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티푸스를 퇴치하는 큰 발걸음이었다. 판사가 과학에 귀를 기울였기에 ‘해피 엔딩’이 됐다.

이번에 퇴치할 것은 장티푸스가 아니다. 음모론, 괴담 따위다. 어차피 일류 국가로 나아가려면 상큼하게 더러운 유전자들을 도려내야 한다. 판결은 누가 내리나. 5000만 국민이다. 태평양 해류의 흐름을 보면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호주 등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먼저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곳에서 국민 다수가 이미 과학의 소리를 듣고 과학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우리 국민이라고 다를 리 없다. 곧 올바른 소리를 듣고 올바른 판결을 내릴 것이다. 어쩌면 광우병, 사드 때와 달리 긴 기다림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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