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결정 등 통화정책의 사령탑인 한국은행은 소란스러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시청역 근처 삼성본관에 잠시 얹혀살다가 5월 새 건물 준공과 함께 번잡한 남대문 중심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은행의 이미지는 번잡한 위치와는 정반대였다. 정문 안에 들어서면 조용한 절간 같다며 '한은사(韓銀寺)'로 불려왔다. 시장과의 소통에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별명이다. 학생 땐 '엘리트' 소리를 듣던 2300여 명의 우수한 인력들이 모였다지만 한국은행은 국민의 주목 대상에서 멀어져 있었다. 역동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랬던 한국은행이 지난해 이창용 총재의 취임을 계기로 변화하고 있다.
"여러분의 협조 덕에 '한은사' 이미지에서 탈피해 ‘시끄러운 한은’을 향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서울 중국 한국은행 본부에서 열린 창립 73주년 기념식에서 한 발언은 최근 한은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한은사'로 불린 건 오래전부터지만 직접 한은 총재가 공식 자리에서 한은사를 언급한 건 유례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2000명 넘는 고급인력을 모아놓고 연구를 하는데, 연구실적 등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리며 소통해야 하지 않겠냐는 게 이창용 총재 취임 후 주문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총재 취임 후 한은은 토론문화 확산, 자료공유 확대 등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 정착 중이다. 경제 현안과 관련한 많은 보고서가 외부로 공개되고 지역본부 직원이 한국은행 앰배서더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창립 기념사에서 이 총재는 "소수에게 권한과 책임이 집중되고 총재만이 한국은행을 대표해 왔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전행적(全行的)인 정보 공유를 통해 우리 내부의 정보 독점화를 막고 모두가 대변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적극적인 대외 소통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이러한 변화에 앞장서는 직원이 더욱 대우받을 수 있도록 인사와 성과평가 제도로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시끄러운 한은으로의 변화는 총재가 가장 먼저 실천 중이다. 그는 통화정책뿐 아니라 다양한 경제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지난 5월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한국은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로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재정·통화 등 단기정책을 통해 해결하라고 하는 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 연금 교육 등 구조개혁이 정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 문제를 구조개혁으로 풀지 않고 단기 처방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에 쓴소리를 던진 것이다.
지난달 물가설명회에선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라면값을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 "정치적 말씀으로 해석한다"며 정부의 과잉 개입에 대한 위험을 내포한 소신 발언을 내뱉었다.
한국은행의 외부 이미지는 개선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더 개선돼야 할 부분도 있다. 대표적으로 민간 금융사와의 급여 차이다. 현재 한은의 인건비는 한은법에 따라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결정한다. 이에 한은의 임금 인상률은 공무원보다 거의 매해 낮은 수준에서 결정돼 왔다.
한은 임직원들에게 더 큰 역할을 부여한 만큼, 더 나은 보상이 이뤄지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대내외적으로 모두 변화하는 한은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