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급기 등장, 엔진기술 한계 무너져
작은 배기량으로 높은 출력 뽑아내
다운사이징→라이트사이징 시대로
車무게ㆍ주행특성에 맞춰 엔진 결정
1980년대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최고출력 경쟁에 나섰다. 당시는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거침없이 기름을 소비했던 대배기량 엔진이 철퇴를 맞기 시작한 때였다.
자연스레 배기량이 낮은, 상대적으로 기름을 덜 먹는 자동차에 관심이 쏠렸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었던 미국의 경우 일본차가 점진적으로 시장을 장악한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높은 동력성능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글로벌 주요 제조사는 배기량이 작은 엔진으로 높은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밤잠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런 내연기관의 출력 경쟁은 1990년대 들어 절정에 달했다.
1990년대까지 내연기관의 출력 한계는 뚜렷했다. 예컨대 배기량 1000cc당 최고출력은 100마력을 넘지 못했다. 기술적 한계였다. 2000cc 엔진을 얹은 중형차의 최고출력은 150마력 안팎에 머물렀다.
자연흡기, 즉 일반적인 엔진은 이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섣불리 욕심을 내면 엔진 블록이 망가지거나 고회전을 견디지 못한 엔진이 뒤틀어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주물 기술의 한계도 존재했다.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과급기다. 작고 가벼운 엔진으로 높은 성능을 내야 하는 항공기 엔진 분야에 처음 등장했던 기술이다. ‘흡입→압축→폭발→배기’ 과정에서 흡입 공기를 인위적으로 압축해 확대하는 형태다. 배기의 힘을 빌려 터빈을 돌리고, 이 터빈이 엔진에 공기를 압축해 구겨 넣는 이 방식을 '터보(Turbo)'라고 부른다.
다만 특정 회전수에서만 효과를 낸다는 게 단점이었다. 너무 낮거나 너무 높은 회전수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회전과 고회전용의 터보를 갖추기도 한다. 흔히 ‘트윈 터보’라고 부른다.
배기가스로 터빈을 회전하기보다 엔진의 핵심 회전력인 ‘크랭크축’으로 터빈을 돌리기도 한다. 전체 회전영역에서 고르게 힘을 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것은 '슈퍼차저'라고 부른다. 독일 폭스바겐은 터보와 슈퍼차저를 동시에 쓰기도 한다.
그렇게 엔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차 업계는 21세기를 맞았다.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주요 제조사는 엔진 배기량을 더 낮추기 시작했다. 배기량이 부족해도 이미 충분한 힘을 낼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00년대 들어 다운사이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낮은 배기량으로 높은 연료 효율성을 내는 것 이외에 주요 국가의 강화된 배기가스 기준까지 충족할 수 있었다.
다운사이징 트렌드는 무조건 배기량을 줄이는 게 아닌, 상대적으로 작은 엔진을 얹는 방식이다. 예컨대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는 한때 12기통 6000cc 엔진을 얹은 초호화 고급차를 내세워 경쟁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다운사이징 엔진 시대가 개막하면서 이들은 배기량을 3000cc급으로 낮춘 고급차를 내놓기 시작했다.
배기량을 줄였으나 이전보다 더 높은 출력을 내기도 했다. 이미 21세기에 접어들며 엔진 기술이 절정에 달했기 때문이다.
다운사이징 엔진 기술이 확산하면서 이른바 대배기량 엔진은 종말을 맞게 됐다. 넉넉한 배기량을 미덕으로 여겼던 미국 차마저 작은 배기량으로 높은 출력을 내는 엔진을 하나둘 얹기 시작했다.
다운사이징 유행은 마침내 새로운 엔진 트렌드로 연결됐다. 무조건 배기량만 줄이는 게 아닌, 특정 모델에 가장 적합한 엔진을 얹기 시작한 것. 이렇게 등장한 내연기관이 이른바 ‘라이트사이징’ 엔진이다.
라이트 사이징은 무조건 배기량을 낮추는 다운사이징과 다르다. 차체와 무게ㆍ주행특성 등을 고려해 가장 적절한 내연기관을 얹는 형태다.
결국, 우리 자동차 시장에도 팽배했던 ‘중형차=배기량 2000cc’라는 등식도 더는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중형 세단에 1.2~1.6 엔진이 늘어났고, 덩치 큰 대형 SUV도 2.0~2.2 디젤 엔진을 얹기도 한다. 이들은 때때로 전기모터를 통해 모자란 출력에 힘을 보태기도 한다.
이렇게 라이트 사이징 엔진은 완성차 업계에게 원가율 하락과 영업이익의 상승까지 안겨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