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효선 국제경제부 기자
미국 유권자들은 역대 최고령 대통령인 그가 앞으로 4년을 더 재임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과 무당층 유권자들의 37%가 나이 때문에 그에게 투표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고 답했다. 그가 말실수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치매설’이 따라붙는 것은 덤이다.
한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 만큼, 그것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4년을 이끄는 자리인 만큼 대통령의 건강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 자리의 무게만큼이나 바이든이 나이 때문에 발목 잡혔을 때의 여파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가 다시 대통령직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나이 탓이라면, 전 세계 일하는 노인에 대한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지게 된다. 의학 기술 발달로 평균수명은 대폭 연장됐지만, 노년층은 아직도 생산과 소비에서 소외되고 있다.
국내 임금 노동자들의 평균 퇴직 나이는 49.3세다. 절반 가까이는 정년이 되기도 전에 비자발적인 조기 퇴직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는 비단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지 않는 노인은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청년들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2070년에는 중·장년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목마 세대’가 도래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고령화 사회 공포의 근원은 일하지 않는 노인에 있다. 노인들이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면, 청장년층은 과도한 부양 의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굳이 정부가 수조 원을 쏟아부으며 출산을 장려하지 않아도 알아서 아이를 낳을 것이다.
2024년 전 세계의 시선이 미국에 쏠리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이라고도 불린다. 이 자리에 올랐던 바이든이 고작 나이 때문에 재선에 실패한다면, 나머지 평범한 노인들은 정말 갈 곳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가 또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지더라도 그 이유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비극적 결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