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대한상공회의소가 14일 주최한 제주포럼에서 “우리 경제가 중국 특수에 중독돼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쳤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 총재는 ‘글로벌 경제 동향과 기업의 대응’ 주제 강연에서 “최근 대중국 수출이 줄어든 이유는 단순한 미·중 갈등 그 이상의 문제”라면서 이같이 따끔하게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30년 넘게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한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 프레임을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명제처럼 당연시해 왔다. 실제 ‘중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중국 특수에 차질이 생길까 봐 국제관례에 어긋나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 중국의 비외교적 행태를 참아 넘긴 적도 허다하다.
중국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태양 같은 존재가 아니다. 자국 이익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동북아 질서 재편까지 꾀하는 매우 가변적이고 위험한 대상이다. 권위주의 체제라는 변수도 있다. 근래엔 첨단 기술 분야를 위시한 많은 부문에서 격차를 따라잡자 한국을 노골적으로 추격하고 압박하고 있다. 오늘날의 대중국 수출 부진은 필연적 결과다. 우리가 일찍이 대비해야 했던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도 다들 마치 해가 서쪽에서 뜬 것처럼 놀라고 있다. 이 총재가 이런 현실을 “지난 10년간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에 중국이 우리를 쫓아올 것이란 생각을 못 하고 패러다임 전환에 나서지 않으며 안주했다”고 요약·정리했다.
중국에 취해 허송세월을 한 대가는 여간 심각하지 않다. 기업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부터 온통 적색등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좀비기업’이 국내 상장기업 중 17.5%에 달한다. 10곳 중 2곳에 가까운 기업이 즉각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중국 경제 전망은 날로 어두워지고 있다. 앞날은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도 없지는 않다. 그 무엇보다 더는 중국 특수에 기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국제 환경도 그렇다. 유로존 국가 중 대중 의존도가 가장 높은 독일이 13일(현지시간) 이례적인 대중국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자국 기업에 “중국에 의존하는 데 따를 위험을 직접 감당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중국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1~5월 미국의 최대 수입국에서 2위도 아닌 3위로 내려앉았다는 뉴스도 나왔다. 미국은 멕시코에서 1950억 달러, 캐나다에서 1760억 달러 상당의 재화를 수입했다. 중국은 1690억 달러로 3위에 그쳤다.
중국이 앞으로 미국 주도의 견제를 뚫고 탄탄한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득이 될 공산은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보다 긴요하고 시급한 것도 엄존한다. 구조조정과 규제 혁파, 3대 개혁 등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시가 급한 이런 내부적 과제를 등한시한 채로는 그 어떤 외부 변화도 무의미할 따름이다. 이 총재는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와 구조조정을 위해 사회의 여러 이해당사자가 바뀔 때가 됐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경청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