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밀수'를 최초 공개한 류승완 감독이 팬데믹 이후 연일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영화 상황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코로나19 확산세 한 가운데서 개봉한 액션 영화 ‘모가디슈’(2021)로 극장 관객 300만 명을 동원하는 저력을 보여준 류 감독은 그해 곧장 ‘밀수’ 촬영에 들어가는 등 쉼 없이 작업한 끝에 이날 신작을 선보이게 됐다.
그는 “한국 영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쉬리’(1999)라는 영화의 역할이 컸는데 당시 경제적으로는 IMF 시기여서 매우 어려웠던 때”라고 기억을 돌이키면서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영화인이 더 정신 차리고 만들면 답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류 감독의 덤덤한 듯한 발언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이후 20여 년간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부당거래’(2010), ‘베테랑’(2015), ‘군함도’(2017) 등을 연출하며 성패를 고루 맛본 연출자로서의 자기 선언으로도 읽힐 법한 대목이다.
이날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밀수’는 외국 담배, 화장품, 청바지 등 밀수품이 성행하던 197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오락 영화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잘 설계된 사건 안에서 제 역할을 빠짐없이 수행하는 덕에 여름 시장 선봉장으로 나선 ‘기세’가 납득되는 작품이다.
바다로 들어오는 밀수품을 건져주는 대가로 큰돈을 벌던 승부사 기질의 해녀 춘자(김혜수)와 우두머리 진숙(염정아)은 모종의 사건 이후 서로 대립하게 되고, 이 틈바구니에 새 유통 활로를 뚫으려는 잔혹한 밀수왕 권상사(조인성)가 개입하면서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다.
직접 잠수해 밀수품을 거둬 올리는 연기를 소화한 김혜수는 “’도둑들’ 촬영 당시 물속에서 공황 상태를 경험해서 굉장히 겁이 났지만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응원하고 환호하면서 공황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또 “2년 전 촬영 당시 현장 일지처럼 기록해 둔 메모를 다시 보고 왔는데 ‘힘들었다’거나 ‘속상했다’는 말이 아예 없더라. 이래서 너무 좋고, 저래서 행복했고… (배우)일을 오래 했지만 현장은 내 한계를 확인해야 하는 곳이라 늘 어려웠는데 처음으로 ‘함께 즐겁다’는 경험을 했다”고 각별한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염정아 역시 “혜수 언니와 함께하면서 정말 많이 의지했다”면서 “여성 서사가 중심인 이 영화가 흥행이 잘 돼 다른 기획도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극 중에는 어촌을 휘어잡은 도덕 없는 젊은 건달 장도리(박정민)와 잇속 밝은 젊은 마담 옥분(고민시)이 등장해 기대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한다. 사건의 축을 지탱하고 이야기를 탄탄하게 진척시킨다.
때문에 '도둑들' 시절 최동훈 감독이 선보인 살아있는 캐릭터들에 '베테랑' 시절 정점을 보여준 류승완 감독의 재기가 결합된 듯한 즐거운 인상도 남긴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권상사 역의 조인성 역시 “같이 나오는 배우들이 다들 ‘한 캐릭터’ 한다. (현장에서 그들 연기를 보면) 웃음 참는 게 제일 힘들었다”며 유쾌했던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밀수’의 또 다른 매력은 다수 삽입된 70년대 가요와 음악감독을 맡은 장기하의 곡들이다. 모두 시대 분위기와 정서를 가늠케 하는 주제곡이다.
류 감독은 “각본을 쓰면서 음악을 찾아들었고 거기에 어울리는 장면을 생산했다. 촬영 전부터 선곡을 이미 마친 것”이라면서 “이 시기 음악들에 굉장히 진심인 장기하 음악감독의 활약도 굉장히 컸다. 영화를 위해 선곡된 음악과 작곡한 곡 사이의 괴리가 덜할 것”이라고 했다.
‘밀수’, 26일 극장 개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2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