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동일인 지정제도 개선과제 건의서’ 제출
대기업 집단 총수가 누구인지를 정부가 지정하는 ‘동일인 지정제도’와 관련해 경제계가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상의는 전날 ‘동일인 지정제도 개선과제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19일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20일까지 관련 지침 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제정안은 동일인 판단기준, 동일인 변경, 동일인 확인 절차 등을 새롭게 정하고 있으나 대한상의 측은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는 건의서를 통해 “1986년 기업집단 규제와 함께 도입된 동일인 지정제도는 단지 기업의 규모를 이유로 제재하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동일인 지정제도가 현 시점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고 변화된 환경에 따라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우선 동일인 명칭 변경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986년 동일인 명칭을 처음 사용하던 당시에는 그룹 총수가 여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던 만큼 동일인 명칭이 현실에 부합했다고 상의는 평가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룹 총수가 2개 이상 기업의 CEO를 맡는 경우가 흔치 않은 만큼 동일인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할 것인지 법인으로 할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그간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 의사와 상관없이 자연인을 우선 지정해왔다. 현재 행정 예고된 지침안에도 자연인을 우선 지정하되 예외적 경우에만 법인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82개 기업집단 가운데 72개 집단은 자연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상태다.
상의는 “상속 등에 따른 오너 지분율 희석, 가족에 대한 관념 변화, 친족관계와 무관한 지배구조 등장 등으로 인해 동일인의 지배력에 대한 의미가 크게 달라졌다”며 “동일인을 법인(최상단회사)으로 할 것인지 또는 자연인(총수)으로 할지 기업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는 사외이사와 비영리법인 임원은 동일인 관련자 범위에서 제외해달라고도 건의했다. 과도하게 넓은 동일인 관련자 범위 규정 때문에 국내기업의 사외이사 선임 풀(pool)이 교수나 관료 출신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동일인이 소규모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경우 누적 기부금액이 재단 총출연금액의 30%를 넘어 최다출연자가 되면 기업집단에 자동 편입되는 규정도 개선과제로 꼽았다. 현재 공정위는 ‘총출연금액’의 의미를 모든 출연재산의 누적 합산액으로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어 소규모 공익재단에 대한 민간 기부가 위축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상의는 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과 관련해 동일인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이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형벌을 부과하는 현행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제 권한이 없는 동일인에게 친족의 자료까지 요구하고 친족이 거절하면 동일인을 처벌하는 것은 형벌의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수원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제도를 도입한 당시는 창업 1세대가 급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내시장의 경제력집중을 경계했던 시기라면 지금은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다투는 시대”라며 “동일인 지정제도가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되지 않도록 예측 가능성과 기업 수용성을 고려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