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ㆍ델리오 회생 이유?… 채권자 위한 선택지 많아”
이정엽 LKB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18일 서울 서초구 로집사 가상자산 레귤레이션 센터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만나 회생 절차의 장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변호사가 이처럼 회생 절차의 장점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올해 초까지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회생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법관 시절에는 블록체인법학회를 설립, 초대 회장직도 맡았다. 올해 2월에는 법률가로서 LKB앤파트너스에 새 둥지를 틀고, 이력을 살려 ‘LKB 로집사 가상자산 레귤레이션센터’에서 센터장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 변호사는 회생과 블록체인이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의 연쇄 ‘코인런’ 사태 피해자들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달 13일과 14일 각각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가 이용자 자산의 출금을 중지하자마자 법정 대응을 위해 피해자들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피해자 100여 명과 함께 지난달 16일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 경영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형사고소했고, 같은 달 23일에는 양사에 대한 채권자 회생도 신청했다. 피해자들과 함께한 빠른 대응으로 인해 지난달 29일에는 델리오 자산에 대한 보전처분 및 포괄적 금지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달 14일에는 하루인베스트, 18일에는 델리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이 대표변호사와 100여 명의 피해자들이 빠른 법정 대응에 나서자, 이에 대한 반발 여론도 생겼다. 일부 델리오 이용자들은 ‘회생은 오히려 회사에만 좋은 일’이라며 회생 철회 운동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회생이라는 이름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면서 “회생은 무조건 회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회생을 통해 자산을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고, 부실 원인에 대한 조사와 함께 부실을 초래한 사람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면서 “채권자들에게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채권을 회수하는 개념에서는 회생과 파산의 절차상 차이점은 크지 않다. 다만 어떤 부분에 더 집중하느냐에 차이가 있다. 그는 “파산의 경우 파산관재인 1명이 모든 절차를 진행하고, 가상자산 관련 전문성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또한 실무상 관재인이 여러 사건을 맡는 경우가 많아, 회수할 수 있는 자산을 적극적으로 찾기보다는 현재 확보된 자산을 빨리 처분하고 분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숨겨진 자산 등에 대한 회복은 기대하기 힘들고, 회사의 부실 원인이나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회생 절차에서는 조사위원과 제3자 관리인 등의 인력이 투입된다. 조사위원의 경우 법원에 예납한 보수를 받고, 회생 사건을 전담해 조사를 진행한다. 그만큼 숨겨진 자산이나 회사 부실 원인 등에 대한 조사가 더 자세히 이뤄질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에 경영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는 게 이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부실 원인을 초래한 사람들은 회생을 안 하려고 한다”면서 “회생이 개시되면 부실 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산 절차로 가게 되면 회사를 매각해서 채권을 회수할 수 없게 되는데 비해, 회생으로는 회사의 매각 절차도 함께 진행이 가능하다. 또한 채권자의 동의를 얻어서 채권 변제 절차를 진행하기 때문에 채권자의 의사를 더 많이 반영할 가능성도 높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점들이 채권자에게 훨씬 유리한 기회들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태를 두고, ‘브레이크 없는 차를 면허가 없는 사람이 운전한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예치나 스테이킹 서비스 등에는 이용자를 위한 안전장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예치나 스테이킹은 자산의 처분권을 완전히 회사에 넘겨주는 구조인데, 이 때문에 업체가 임의로 이용자의 자산을 유용하더라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서비스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자격, 즉 면허가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업계에 규제가 없으니 새로운 시도는 많지만, 업체들은 전통 금융사 같은 리스크관리 시스템이나 충분한 자본금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높은 수익을 위해 고객자산을 운용해버리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회사의 대표 또는 임원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자산을 빼돌리자’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라면서 “해킹이나 운용 과정에서 더 많은 손실이 났다고 주장하며 자금을 빼돌린 사례들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에는 ISMS나 VASP 등을 가지고 ‘안전하다’라는, 사실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라임 펀드 사태 등을 봐도 설립한 뒤 고객 자금을 막 써버리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면서도 “펀드 설립과 비교하면 운용하는 사람에 대한 규제가 있다는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가상자산 서비스 관련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의 부재와 함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피해를 회복하고 해결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그는 “지금 피해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피해 회복에 대한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피해자들에게 최대한 빠르게, 많은 자금을 돌려줄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한데, 시장에서는 제대로 회수된 사례가 아직 없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리딩 케이스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일례로 이 변호사와 LKB앤파트너스는 사업자가 이용자들로부터 받은 가상자산의 법적인 소유권을 증명하는 케이스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변호사는 “(하루인베스트의 경우) 형식적으로 국내외에 여러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법인격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자산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특정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법원도 이 때문에 (보전처분 등의)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상자산의 이동에 ‘키’가 필요하다는 점과 국내 거래소의 KYC(고객확인) 절차 등을 활용해 실질적 소유권을 가진 법인을 특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상자산 키를 물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법인이나, 자산 처분을 위해 국내 거래소에서 사용된 KYC 명의자가 경영진으로 소속된 회사를 (실질적으로 자금을 소유한 회사로) 특정해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 밖에도 이 변호사는 LKB 로집사 가상자산 레귤레이션 센터 유튜브나 오픈채팅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번 사건 관련 내용은 물론, 이용자들이 알아야 하는 정보 등을 주기적으로 공유하는 중이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서 기존 가상자산 생태계가 소수만이 정보를 나누고 불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싶다”면서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올바른 정보로 의사결정하는 생태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포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