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진출 기업 자원봉사 ‘구슬땀’
국내NGO 신속한 지원도 돋보여
지난주 튀르키예에 다녀왔다. 희망브리지(재해구호협회)가 지진 피해지역에 제공하는 임시주거시설(컨테이너 하우스)의 입주 행사에 참석키 위함이었다. 지난 2월 6일 튀르키예 남동부를 강타한 지진은 본진(규모 7.8)과 여진(규모 7.5)으로 같은 날 두차례나 발생해 피해를 가중시켰다. 현재까지 사망자 6만여 명, 이재민이 300만 명에 이른다.
희망브리지가 200동의 주거시설을 제공한 카흐라만마라슈는 2차 지진의 진앙지이기도 해서 피해가 집중됐다. 곳곳에 이재민을 위한 주거시설이 있었으나 보이는 것은 대부분 텐트였다. 물과 식품, 의류 등 긴급 생필품을 받아 당장의 어려움은 넘겼으나 무더위와 다가올 추위를 이겨나게 해 줄 안정된 주거시설은 이재민들의 가장 절박한 요구였다.
희망브리지가 제공한 컨테이너 하우스는 방 한 칸, 거실 한 칸에 가운데 화장실이 있는 단출한 규모이지만 2층 침대와 소파, 책상이 구비됐고 냉장고, 에어컨, TV도 설치돼 임시 주거시설로는 모자람이 없었다. 희망브리지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현지 시 정부는 재난복구 현장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그런데 10여 분의 상영시간 중 외국 구호단체로는 희망브리지(Hope Bridge)만이 보였다. 다른 나라 NGO는 왜 보이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렇게 신속하게 대규모 시설을 제공한 곳은 희망브리지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듭 한국 국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국내 구호에 주력해 온 희망브리지가 국제적 NGO와 비견될 정도로 현장 필요에 신속히 응할 수 있었던 데는 현지 대사관의 선제적 노력이 큰 몫을 했다. 지진이 발생한 다음 날 이원익 주 튀르키예 한국 대사는 눈 속에 600km를 달려 카흐라만마라슈에 도착했다. 숙소가 없어 한 학교 운동장에 차를 세워 놓고 사흘 밤을 차박을 했다. 그리고 정부 관계자를 만나 구호 방법을 논의했다.
현지 정부는 이 대사의 요청을 받고 운송 차량과 배송인력을 우선적으로 배정했다. 대사급의 고위인력이 직접 내려와 동분서주하고 있는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NGO들이 보내는 텐트, 의류, 담요, 식품, 의약품 등 구호물품을 적기에 이재민들에게 나눠줄 수가 있었다.
콘테이너 하우스가 제 때 제작돼 이송될 수 있었던 것은 희망브리지의 현장감각 덕분이었다. 희망브리지는 국내 재난 현장에서는 임시주거시설 제공의 경험이 있었지만, 해외 현장은 처음이었다. 재난 현장이 으레 그렇듯 사이비 업자들이 들끓었다. 그러자 희망브리지는 아예 국내 컨테이너 하우스 전문기술자를 자문역으로 발령 내 재능기부를 받았다. 그리고 튀르키예 현지에 세 차례나 출장을 보내 사이비 업자를 색출해내고 품질을 확보하고 시공 기간을 단축해 냈다.
포스코와 현대에서 이 사업을 담당했던 노련한 전문가는 해외 사업에 문외한인 희망브리지의 약점을 채워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는 카흐라만마라슈에서 200km 떨어진 이스켄데룬까지 들어가 300동의 컨테이너 하우스 건립을 자문해 주기도 했다. 또 희망브리지는 이곳에 커뮤니티 센터 건립을 약속해 이재민들의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구호만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을 약속하는 무언의 상징이 세워지는 셈이다.
우리나라 해외긴급구호대(KDRT)의 활동도 돋보였다. 골든타임(72시간)이 넘어선 이후에도 생존자를 구조해 냈고 의료진 중심의 2진을 파견해 인근 주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카흐라만마라슈 재난 현장에 자원봉사자로 달려간 해외한인무역협회(OKTA) 튀르키예 지부와 튀르키예 한인회도 통역으로 나서는 등 민간구호사절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튀르키예에서 오랫동안 뿌리 내리며 사업을 해 온 이들은 본국의 아낌없는 지원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새삼 보람을 가졌다고 했다.
해외 재난현장에서 코리아는 원팀이었다. 현장 중심으로 그린 큰 그림 위에 대사관이 선제적으로 길을 놓고 구호단체들이 활동하는 동안 현지에 뿌리내린 우리 교민·기업들이 자원봉사를 하며 원팀코리아를 완성해 냈다.
카흐라만마라슈의 길 위에서 현대자동차는 달렸고 숙소에서는 삼성TV가 보였다. 철거의 잔해를 치우는 데는 현대중공업의 굴삭기가 굉음을 내고 있었다. 원팀 코리아는 이렇게 형제의 나라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