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가상자산 관련 수사 조직을 강화하는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업계는 시장 규모가 커진 만큼 관련 전담 수사 조직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다는 입장이다. 또한 관련 수사 조직 강화가 입법과의 시간 차를 메우는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가상자산 관련 수사 전담 조직을 신설, 통합해 수사 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서울남부지검은 가상자산 관련 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가상자산합동수사단이 26일 공식 출범을 예고했다. 합수단이 관련 범죄만을 전담으로 수사하는 조직인 만큼, 수사 전문성이 강화될 전망이다.
또한 남부지검은 현재 최근 연이어 발생한 위믹스 유통량, 김남국 무소속 의원, 하루·델리오 사태 등을 직접 조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사건들을 합수단이 맡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해당 사건들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법무부의 경우, 20일(현지시각) 니콜 아젠티에리 미 법무부 차관보가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설에서 ‘가상자산 범죄 수사 팀(NCET)’과 ‘컴퓨터범죄 및 지적재산권과(CCIPS)’의 통합 계획을 알렸다. NCET는 가상자산 관련 범죄 오용, 특히 거래소와 자금세탁 인프라 등에 대한 조사와 기소를 위해 2021년 출범한 가상자산 전담 수사팀이다. 미 법무부는 이번 통합 조치로 가상자산 범죄 수사를 맡는 검사 인력이 두 배 이상 증가하고, 범죄에 활용된 가상자산에 대한 추적 및 압수 등 수사 능력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가상자산 범죄 수사 조직을 강화하고 있지만, 유럽연합(EU)이 올해 5월 전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 시장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MiCA법을 제정한 것과 달리 업계를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업권법 제정은 더디다. 그나마 한국은 미국과 비교하면 나은 편에 속한다. 한국은 지난달 30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7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이용자보호’에만 초점을 맞춘 법안으로, 국회는 가상자산 사업 진입 규제 및 코인 발행 및 공시 등 업계 전반에 대한 내용은 추후 제정할 2단계 법안에서 다룬다는 방침이다.
다만 최근 발생한 하루ㆍ델리오 사태를 계기로 당국의 가상자산사업자(VASP) 인가를 받은 업체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조금 더 촘촘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이번 1단계 법안이 2021년 5월 처음 논의된 뒤로 2년 2개월이 흘러서야 제정된 만큼, 2단계 법안 제정이 신속히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바이든 정부가 ‘디지털자산의 책임 있는 발전을 위한 포괄적 프레임워크’를 발표했지만, 그 뒤로 규제에 대한 명확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미 증권관리위원회(SEC)와 상품선물관리위원회(CFTC)가 개별 가상자산 거래소와 기업 및 코인에 대한 고소를 통해 ‘집행에 의한 규제’를 지속하는 중이다. 이 때문에 미국 업계에선 ‘규제 명확성’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선 30개 이상의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가상자산 관련 수사 전담 조직 강화에 대해 업계 관계자 A씨는 “업계에서 움직이는 자금의 양도 무시 못 할 상황이 된 만큼, 비교적 전문성을 가진 수사 집단에 대한 필요성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B씨 역시 “그만큼 가상자산 관련한 사기 등 피해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라면서 “제도권 밖에 있던 업계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국가적으로 규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업계는 이번 수사 강화를 통해 규제가 만들어지기까지 시간 차를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B씨는 “규제가 미비한 동안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면서 “입법이 미뤄지면 범죄행위라도 잡아내야 하고, 일단 수사가 강화되면 예방적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A씨 역시 “아무래도 규제를 만드는 게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시간 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재 논의 중인 만큼, 시작이 안 된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