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로의 결혼식, 장례식 등 주요 행사 때마다 결집해 충돌하던 조직폭력범죄 집단이 최근 조용해졌다. 검찰이 본격적인 강력범죄 소탕에 들어가자 전국 폭력조직이 위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19일 칠성파 조직 두목인 이강환 씨의 사망과 관련해 그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 지역 장례식장을 중심으로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큰 소동 없이 조용히 마무리됐다고 한다.
칠성파는 1950~60년대 결성돼 중구 남포동·서구 충무동 등 당시 부산의 중심 지역 유흥가를 무대로 활동했다. 이 씨는 1970년대 초반 조직을 장악한 뒤 유흥업소와 오락실 사업 등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이 과정에서 다른 조직들을 제압하며 전국구로 영향력을 넓혔다.
이 씨는 2010년대 초반까지 칠성파를 이끌었다.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됐지만, 아직 조직 내에서는 두목으로 불린다고 한다. 지난해 진행된 이 씨의 팔순 잔치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많은 조직원들이 몰리며 관심을 끌었다. 당시 경찰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형사 인력을 배치했다.
폭력조직은 그들의 관혼상제 때마다 집결하는 경향이 있다. 평소에는 조용한 듯 지내다가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행사에 참석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조직에게 보여주기 위한 세력 과시용이거나, 행사 도중 혹시 모를 타 조직과 다툼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번 이 씨의 장례식이 조용히 끝난 것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이 가운데 조직범죄에 대한 검찰의 강한 경고 메시지 때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검찰은 최근 폭력조직 엄벌을 넘어 해체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칠성파를 비롯한 전국 조직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신준호 부장검사)가 지난달 30일 폭력조직 ‘수노아파’ 조직원들을 대거 재판에 넘긴 것이 전국 폭력조직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수노아파 조직원들은 2010년 서울 한남동 ‘하얏트 호텔’에서 호텔 직원과 손님들에게 위협을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노아파에 행동대원으로 단순 가입한 이들까지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한 일선서 수사과장은 “최근 폭력조직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지역 경찰들이 사전에 주의를 주고, 조직원들도 내부적으로 단속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히 수노아파 신규 조직원들이 활동하다가 줄줄이 구속되며 ‘자칫 잘못하면 사건에 엮일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위축된 모습을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도 치밀해지고 있다. ‘강력통’으로 불리는 한 검사는 “최근 검찰 수사 방식이 전문화되며 폭력조직의 행위를 확인하고 규명하는 것이 이전보다 수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수노아파 사건에서 CCTV나 통화내역 재분석 등 수사방법을 통해 조직원들을 찾아내고 범행을 파악했다. 특히 비교적 어린 조직원들은 SNS에 자신들의 모임 사진을 수시로 올리며 검찰에 수사 단서를 주기도 했다.
검찰 강력부의 부활에 따라 지역 조직폭력배의 활동에도 제약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는 검찰 강력부와 반부패부를 합쳐 반부패강력부를 만들었고, 이에 강력사건 전담 검사 수도 줄었다. 그러나 지난해 검찰이 직제 개편을 통해 강력부를 부활하고 수사 인력을 늘리며 자연스레 관련 범죄 정보도 수집됐고, 폭력조직에 대한 수사 역량도 올라갔다는 평가다.
이밖에 칠성파 등 폭력조직의 경제력이 넉넉하지 못해 세를 결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 이에 따라 조직이 10여 명 정도의 점조직으로 분화해 와해됐을 것이라는 분석, 후계자를 확실히 만들어 ‘제3세대’ 조폭으로 진화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