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중심 인터페이스…스포티한 RS 트림
차급 넘어서는 공간감…편의 사양은 아쉬워
SUV 본분에 충실한 ‘작고 알찬 SUV’ 포지션
2020년 출시 이후 글로벌 시장에 62만 대 넘게 판매된 쉐보레의 ‘트레일블레이저’가 부분 변경 모델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로 재탄생했다. 지난 3월 출시된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함께 GM 한국사업장(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를 주도해야 할 핵심 모델이다.
중대한 역할을 맡은 만큼 GM 한국사업장의 기대도, 소비자들의 기대도 크다. 미국 브랜드 차는 디자인이 투박하다는 편견을 깨고 등장했던 트레일블레이저의 부분 변경 모델을 26일 직접 시승했다.
외관상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이하 트레일블레이저)’는 이전 모델과 극적인 차이를 두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곳곳에서 조금 더 세련된 인상을 주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전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쉐보레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듀얼포트 그릴’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상·하단으로 나눈 분리형 그릴을 바탕으로 쉐보레의 엠블럼과 주간주행등(DRL)이 배치됐다. DRL은 전작보다 얇은 LED 조명이 장착돼 공격적이고 날렵한 인상을 준다.
트림별로는 다른 루프 컬러가 활용된다. 최하위 트림인 LT와 한 단계 위 트림인 프리미어는 차체와 같은 색상의 루프가 장착된다. 반면 상위 트림인 액티브 트림에는 퓨어 화이트 색상이, RS 트림에는 모던 블랙 색상이 적용된다. 아울러 액티브·RS 트림에는 해당 트림에서만 선택 가능한 외장 컬러가 제공돼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도 있다.
실내 디자인 변화는 거의 ‘완전변경(풀체인지)’ 급이다.
1열 인테리어에서 운전자의 시선을 가장 많이 잡아두는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는 각각 8인치, 11인치 스크린이 배치됐다. 화면이 모두 운전자를 향이 살짝 틀어져 운전자를 배려했다. 중앙 송풍구와 비상 버튼은 센터 디스플레이 하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아래로는 공조 버튼과 통풍·열선 시트 등 편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물리 버튼이 배치됐다.
이날 시승한 RS 트림은 ‘랠리 스포츠(Rally Sport)’의 앞글자를 따온 만큼 블랙 컬러에 레드 포인트가 묻어있다. 큼지막한 빨간 선이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것은 물론 시트의 레드 스티치, 기어 노브의 레드 포인트 등으로 더욱 스포티한 느낌을 자아낸다. 2열까지 넓게 자리 잡은 파노라마 선루프는 시원한 개방감을 준다.
실내 공간도 차급에 비해 훨씬 넓게 느껴진다. 트레일블레이저는 RS 트림 기준으로 전장 4425mm, 최대 전고 1670mm, 전폭 1810mm로 준중형급 차체를 갖췄다. 그럼에도 2640mm의 넓은 휠베이스로 탑승 공간을 넓혔으며 1열과 2열 모두 평균적인 키의 성인 남성이 앉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갖췄다.
트렁크는 기본 460리터(L)의 적재 용량을 제공하며 2열 시트 폴딩 시 최대 1470L까지 적재 용량을 늘릴 수 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주행 성능’에서도 충분한 매력을 뽐낸다.
트레일블레이저에 장착된 1.3L E-터보 엔진은 적은 배기량에도 불구하고 부족하지 않은 힘을 발휘한다. GM 한국사업장 관계자는 이 엔진을 두고 “‘2.0L 자연흡기’와 비슷한 엔진 성능을 발휘한다”고 평가했다. 제원상 트레일블레이저의 최고출력은 156마력(ps)·5600rpm으로 2.0L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K5(160ps, 6500rpm)와 비교해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실제 주행에서도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꽤나 묵직하게 느껴진다. 9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된 가속 구간 중간중간 가벼운 변속 충격이 느껴지지만 주행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일상적인 주행에서 빠른 속도인 시속 80km에 도달하는 데도 체감 시간이 길지 않고, 시속 100km 이상의 고속 주행에서도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달려나간다.
가벼운 오프로드 주행에서도 제법 SUV스러운 주행감을 자랑한다. 직접 시승한 사륜구동(AWD) 모델은 자갈밭, 진흙 길, 경사로 등에서도 단단하게 노면을 움켜쥐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발휘했다. ‘정통 오프로더’라고 불리기엔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도심형 SUV’라는 컨셉으로는 충분한 오프로드 주행 성능이다.
편의 장비는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뒤섞여있다. 먼저 센터 디스플레이의 왼쪽 일부 화면이 단순히 물리 버튼을 대신하는 형태로 자리하고 있어 11인치에 달하는 화면 전체를 시원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디스플레이의 터치 반응 역시 미세하게 느린 편이어서 주행 중 편리하게 조작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무선으로 안드로이드 오토, 애플 카플레이를 이용할 수 있는 무선 모바일 프로젝션은 편리하다. 유선 연결 없이도 간편하게 휴대폰을 통해 티맵(TMAP)과 음악 프로그램 등을 활용할 수 있어 공간 활용에도 좋다.
주행 중 활용되는 소음 감쇄 기능인 ANC 기능은 뛰어난 정숙성을 제공한다. ANC 기능은 소음과 상쇄되는 반대 주파수를 활용해 소음을 줄이는 기술인데, 실제 주행에서는 타이어가 노면에 닿으며 발생하는 노면 소음 외에 풍절음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속 120km를 넘어가지 않는 한 트레일블레이저에서 풍절음으로 고통받지는 않을 듯하다.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는 시내 주행이 잦은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오토 홀드’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앞서 출시한 ‘트랙스 크로스오버’에 탑재되며 소비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위 모델인 트레일블레이저에 이 기능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약점으로 보인다.
전작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모델인 만큼 트레일블레이저는 준중형 ‘SUV’로서 좋은 상품성을 갖췄다. 차급에 비해 묵직한 주행감, 일상적인 오프로드를 너끈히 주파할 수 있는 파워, 이전 모델보다 개선된 실내 디자인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차다.
동급 대비 편의 기술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쉽지만 편의 기능은 말 그대로 ‘편의’를 위한 기능이다. 작은 엔진 대비 큰 출력, 작지만 알찬 SUV를 찾는다면 트레일블레이저는 이번에도 좋은 선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