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31일 외국인 가사·육아 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계획안을 공개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연말부터 서울에서 필리핀, 태국 등 외국인 근로자 100여 명이 가사·육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들은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20∼40대 맞벌이 부부와 한부모 가족, 임산부 등의 집에서 최소 6개월 일하게 된다는 설명이죠.
이들의 출신국으로는 가사 서비스 관련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가 우선 검토됩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발급받아 국내로 들어오게 되는데, E-9 비자가 적용되는 고용허가제 외국 인력 송출 국가는 16개국입니다. 이중 특히 필리핀 출신 가사 근로자는 자국 직업훈련원에서 6개월간 훈련받은 뒤 수료증을 발급받아야 외국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가사·육아에 대한 경력과 지식이 있고, 한국어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외국인 가사 근로자가 국내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자, 마약류 중독자,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은 선발에서 제외되죠.
국내 입국 전후에는 한국 언어·문화, 노동법 등을 교육받고, 국내 가사 근로자 서비스 제공 기관에 배정된 뒤에는 국내 가정으로 실무 투입 전 아동학대 방지를 포함한 가사·육아, 위생·안전과 관련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숙소는 서비스 제공 기관이 마련하고, 숙소 비용은 근로자가 부담하게 되는데요. 서울시는 외국인 가사 근로자가 국내에 정착하는 데 드는 숙소비·교통비·통역비 등을 초기에 지원할 예정입니다.
국내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을 보장받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은 9620원으로, 월 급여로 환산하면 201만580원(209시간 기준)입니다. 근로기준법 역시 적용되지만, 휴게, 휴일, 연차휴가 등 일부 규정은 가사근로자법에 따라 적용 제외됩니다.
노동부는 다음 달까지 서울에 거주하는 잠재 수요자를 대상으로 외국인 가사·육아 서비스 수요량, 선호하는 서비스 제공 형태와 출신 국가, 자격 요건, 지급 의사 가격 등을 먼저 조사하겠다는 계획인데요. 정작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시범사업을 그리 반기진 않는 모양새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외국인 가사·육아 근로자 도입이 검토되는 건 계속 증가하는 육아 부담에 반해 한국인 가사 도우미 종사자는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부에 따르면 한국인 가사·육아 도우미 취업자는 2019년 15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 2021년 12만1000명, 지난해 11만4000명으로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이에 가사 도우미의 임금도 크게 올랐습니다. 내국인 가사 도우미의 시간당 임금(출퇴근형)은 올해 최저임금인 9620원보다 훨씬 많은 1만5000원입니다. 입주형은 서울 기준 월 350만~450만 원을 부담하고 있죠. 맞벌이 부부도 선뜻 고용하기엔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고령화도 뚜렷합니다. 내국인 가사·육아 인력 취업자는 63.5%가 60대 이상, 28.8%가 50대죠.
이날 공청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상임 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은 “내국인 종사 인력이 줄고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저출산에 대응하고 여성의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은철 고용부 국제협력관은 “시범사업 계획안은 외국인 가사 인력 도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사회적 수용성, 실제 수요, 운용상 문제점 및 해소방안 등을 면밀히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며 “수용자 비용 부담을 더 완화하기 위한 방안은 앞으로 추가적인 논의가 계속될 것이다. 다양한 방안을 놓고 협의를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부연했죠.
그러나 우려도 상당합니다. 외국인 가사 근로자를 신뢰할 수 있을지, 가사·육아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진 않을지, 또 한국 중년 여성의 일자리가 줄어들진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큰데요. 공청회에서도 같은 맥락의 지적이 나왔습니다.
복직을 앞둔 워킹맘 강초미 씨는 “5060대 육아도우미를 선호하는 이유는 2030대 부부가 가지지 못한 육아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이론만으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짚었는데요.
강 씨는 “단순히 가사가 아닌 육아(서비스)라면 이용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3대가 덕을 쌓아야 좋은 가사도우미를 구한다’는 말이 있다. 실력 있는 가사도우미를 구하기 위해서는 대기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살배기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고은 씨는 “(가사·육아 도우미는) 비싸다고 안 쓰고 저렴하다고 쓰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가 쟁점이다. 문화도 한두 번 교육받는다고 흡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죠.
김 씨는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한국 중년여성 일자리를 뺏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며 “이에 따라 돌봄시장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저하하지 않을까도 우려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외국인 가사·육아 근로자 도입보다는 한국인 종사자가 늘어날 수 있도록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누가, 얼마나, 왜 외국인력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며 “외국인력 도입이 가사·육아 서비스 전문성 확보나 직업에 대한 국민인식 개선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느냐”라고 지적했는데요. 이어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지 겨우 1년 된 만큼 국내 노동시장 환경을 개선하며 장기적 관점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외에도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이 ‘가사·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편견을 강화한다거나, 외국인 차별과 착취에 앞장서는 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반대 목소리가 거센 상황입니다.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은 내국인 가사·육아 인력 감소 및 고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현행 가사 고용 서비스의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목적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맞벌이 부부들의 금전적 부담을 줄이면서 저출산에 대응하고 경력 단절을 예방한다는 취지를 지녔죠.
그렇다면 진작 외국인 가사 근로자를 도입한 나라들은 어떨까요? 5월 노동부 주최로 열린 ‘외국인 가사 노동자 관련 공개토론회’에서는 홍콩,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아시아 4개국이 외국인 가사 노동자 제도를 도입했지만, 합계출생률이 증가하는 효과는 없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 대만은 1990년대 외국인 가사 근로자 제도를 도입했고, 일본은 2017년부터 도쿄, 오사카 등 6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선 외국인 가사 노동자와 저출생, 경제활동 참여율의 뚜렷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합계출생률이 감소하는 추세고, 특히 홍콩과 대만은 2020년부터 합계출생률이 1명 미만으로까지 떨어졌죠.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이 저출생에 대한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걸 방증하는 셈입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가사 노동자 제도 도입의 주요 정책 목표로 여겨지는 저출생 극복과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 증가는 아시아 4개 국가에서 통계상 유의미한 관계를 찾기 어렵다”며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지 약 1년밖에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서 내국인력 유입 가능성을 도외시한 채, 외국인력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고 짚었는데요. 이어 “한국에서는 가사근로자법을 통해 가사 근로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추구하는 만큼, 그에 대한 노동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는 대만, 싱가포르 등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 위원은 “현재 민간시장에서 외국인 가사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선호도가 실질적으로 어느 규모인지 제대로 파악된 바가 없으므로, 실질적인 수요와 내국인력 부족 여부를 신중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지자체 사업 수행기관을 정부 인증기관으로 한정하거나 세액공제, 이용자 바우처 제공과 같은 혜택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수십 년간 저출산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왔다는 평가를 받는 스웨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는 성평등과 가족 복지를 중심으로 장기적 대책을 강구해왔습니다. 특히 스웨덴은 부모 각자에게 육아휴직 240일씩을 제공합니다. 이 중 90일은 반드시 아빠가 사용해야 합니다. 현재 스웨덴도 합계출생률이 2016년 1.85명에서 지난해 1.52명으로 떨어져 고심하는 상황이지만, 우리나라(0.78명)에 비하면 2배 수준입니다. 단기적 대응책보다는 성평등 강화와 노동시간 단축에 계속해서 힘을 쏟아 선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죠.
우리 정부는 시범사업 전까지 현장 의견을 충분히 듣고 수요조사 등을 통해 문제를 보완해나가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 이전 일과 육아의 병행을 어렵게 하는 장시간 노동, 불완전 고용, 성차별 직장문화 등에 대한 개선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엔 아쉬움이 남는데요. 일례로 남성 근로자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수차례 올라왔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필요성을 인지했음에도 방치됐다는 겁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새로운 제도를 섣불리 도입하기보단 각종 정책과 제도를 원점에서 점검하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