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원화가 아닌 달러가 기축통화였던 적이 있었어…
여기저기서 들리는 ‘고릿적 이야기’라는 핀잔. 이 과거 얘기는 물꼬를 트면 끝이 없는데요. 현재는 한국의 10번째 도인 ‘아메리카도(道)’가 예전엔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강대국이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입니다. ‘더운 여름날,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틀기가 겁이 났다’는 스토리는 이맘때면 흘러나오는 전래동화죠.
네,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지금 한국을 넘어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 ‘상온 초전도체’를 향한 ‘밈’들입니다.
한국 연구진이 최근 개발한 ‘상온·상압 초전도체’ 논문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데요. 과학계뿐 아니라 산업계 심지어 주식시장까지 떠들썩합니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0’인 물질인데요. 전기저항이 없다는 것은 에너지의 손실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즉 전자기기를 작동할 때 생기는 발열이 사라져 전력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이죠.
초전도 현상은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가 절대온도 4K(-269℃)에서 발견한 이래 초고압 영하 조건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는데요.
최근 과학계에 따르면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고려대 창업기업) 등 연구팀은 최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상온·상압 조건에서 납과 구리, 인회석(인산염 광물 일종)을 활용해 초전도체를 구현했다고 발표했죠.
해당 논문에는 약 30℃ 상온에서 전기저항이 없는 초전도체 ‘LK-99’를 발견해냈다는 연구결과가 담겼는데요. 20여 년에 걸쳐 1000회가량 구리와 납을 구워내며 상온 초전도체를 구현해냈다는 주장이죠. 이 연구팀은 초전도체를 400K(127℃) 이하 조건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파장이 컸습니다.
110여 년 초전도체 개발 역사에서 과학자들은 상온(25℃ 내외)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찾기 위해 경쟁해 왔는데요. 2010년대 들어 상온 초전도체 이론이 나왔지만 이를 실험적으로 입증하거나 상용화하진 못했죠.
상온에서 초전도체를 구현할 수 있다면 이제까지 필요했던 냉각과정이 필요 없어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데요.
구리 전선 등을 사용해 발전소에서 사용처로 전기를 보내면 저항으로 인해 사라지는 전기 에너지의 손실액은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조(兆) 단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상온 초전도체가 가능하다면 현재 우리나라에 깔린 모든 전선의 송전 효율이 ‘100%’에 가까워질 수 있는데요. 실용화된다면 전기요금은 매우 저렴해지겠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초전도체는 고성능 컴퓨터의 최고의 적, ‘발열’을 줄일 수 있는데요. 서버실엔 24시간 에어컨이 돌아가는 이유를 보면 알 수 있죠. 이 발열이 사라지게 된다면 양자컴퓨터·슈퍼컴퓨터 등의 성능도 높일 수 있게 됩니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연구 결과지만 파장은 엄청났는데요. 실제로 이 ‘LK-99’가 실현된다면 벌어질 상황에 다들 상기된 상태죠. 아니 좀 많이 흥분했는데요.
‘초전도체의 선구자’가 되는 대한민국은 이름 그대로의 정말 큰 나라가 된다는 엄청난 청사진이죠. 먼저 한국의 모든 시도는 그야말로 미래도시 수준이 된다는 짤이 등장했는데요. 이곳이 사람 사는 곳 맞나 하는 느낌이지만, 여기는 위대한 대한민국인이 사는 우러러볼 곳이라는 설명입니다.
5달러 지폐 사진에 10원이라는 문구가 붙은 밈도 나왔는데요. 곧 5달러는 한국 원화의 10원 정도 수준이라는 뜻이죠. 그만큼 한국과 한국 원화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뛸 것이라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추측입니다. 기축통화는 바로 원화로 바뀌게 되고, 세계 곳곳에서 ‘한국돈 초환영’이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게 되는데요.
초전도체를 활용하는 MRI 검진을 한국 시골 곳곳에서도 할 수 있고, 건강보험이 적용된 이 검사의 비용은 단돈 3000원이라는 밈에 한 네티즌은 “3000원이면 9000달러네”라는 댓글을 달아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10번째 도인 ‘아메리카도’로 편입되죠. 꿈의 도시 서울을 찾아 “아메리카도 출신입니다”라며 아메리카 사투리 티를 내는 이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상상까지 더해집니다.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G2는 한국의 2개 시도, G7는 한국의 7개 시도, G12는 한국의 12개 시도가 된다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이야기도 추가됐고요.
논문 1저자인 이 교수가 고려대학교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해 국호가 ‘한국’이 아닌 ‘고려’로 바뀌게 되고, 아메리카도에 있는 하버드는 고려대보다 한참 밑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어질어질한 밈도 나왔죠.
초전도체 구현을 발표한 퀀텀에너지연구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연구소 대표인 이석배 대표를 이른바 ‘석배형’이라고 칭하며 그를 칭송하는 글이 줄을 지어 게재됐는데요.
석배형에 대한 칭송은 ‘노벨상’이 사라진다는 소식까지 흘러갑니다. ‘노벨상 따위’라는 평가와 함께 ‘석배상’이 등장하게 된다고 말이죠. ‘노벨이 평가할 만한 가치가 될 수 없다’라면서요.
그런데 이런 ‘행복회로 밈’에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신난 모양새인데요. 밈의 속도가 한국인이 이겨낼 수 없는 수준입니다.
현 최신 과학기술인 챗GPT와 AI를 두고 ‘LK-99’에 눈이 돌아가는 나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고요. 심지어 챗GPT와 AI가 ‘LK-99’의 출현으로 수장되기도 하죠. ‘LK-99’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한다는 칭송 밈도 쏟아졌는데요.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 행성에 있는 초전도체 ‘언옵테늄’이란 광물을 얻기 위해 침공한 내용에 “한국에 있는데요?”라며 황당해하는 나비족의 모습까지 나왔습니다.
일본 네티즌들도 밈 놀이에 동참 중인데요. 이들이 “형제의 나라로서 자랑스럽다”라며 발을 걸치자, 큰 나라 한국은 너른 마음으로 “이제 일본은 동조선”이라며 포용하는 식입니다.
상상만으로 이미 우주에 살다 온 듯한, 애국심 넘치는 이 ‘밈’은 진짜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연구 결과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외신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지만, 학계에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입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논문의 세부사항이 부족해 많은 물리학자가 이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한국 연구진의 논문에 대한 학계 반응을 전했는데요.
마이클 노먼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연구원은 “납-인회석은 비전도성(전기가 흐르지 않는) 광물이고, 이는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선 그리 적합하지 않다”라고 꼬집기도 했죠.
이에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2일 상온 초전도체와 관련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위원회를 발족하고 대응에 나섰는데요. 검증위원회에서 현재까지 논의된 바에 따르면 두 편의 논문을 통해 발표된 데이터와 공개된 영상으로는 ‘LK-99’가 상온초전도체라 할 수 없다고 결론지은 상황입니다.
이 ‘LK-99’가 설사 실현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가능성’으로 넘치게 행복했는데요. 잠시나마 엄청난 강대국 시민이 된 기쁨에 취해 본 것만으로 그야말로 신이 났죠. 이런 가능성이 또 등장해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요. 깨고 싶지 않은 초전도체 음주가무, 이 ‘들뜸’을 아직은 더 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