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 가운데 피의자들의 정신질환 여부에 눈길이 쏠린다. 그간 법원이 여러 살인 사건에서 심신미약 등을 이유로 피의자들의 형을 감경해왔기 때문이다.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것이 법관 개인의 자의적인 판단에 달린 만큼 보다 전문성을 갖춘 정신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객관성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7일 본지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서 인터넷열람 시스템을 통해 최근 1년간 ‘조현병’ ‘살인’ ‘살인미수’ 키워드가 포함된 전국 법원 판결을 집계한 결과, 피의자들이 조현병을 이유로 처벌불원을 요구하는 38건의 사건 가운데 법원은 29건(76.4%)을 심신미약을 인정해 형을 감경하거나 유리한 정상 판단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이 강력범죄 사건에서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들의 형을 감경해줄 수 있는 것은 형법 제10조 2항(심신장애자)에 따른다. 해당 조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은 사물 변별 및 의사결정 능력이 없거나 미약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100%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를 저질렀음에도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이유로 감형되는 사례들이 발생하며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해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검찰의 ‘2022년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검거된 살인범죄 범죄자의 53.7%가 정상, 37.7%는 주취상태, 8.6%는 정신장애로 나타났다. 살인을 저지른 100명 중 8명이 정신질환을 가진 채 살인을 저지르는 셈이다.
문제는 법원이 이 피고인들의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하는데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심신장애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판사에게 맡기고 있는데 이 경우 의학적 전문성이 떨어져 자칫 엄격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우려다.
법원은 형사소송법 308조(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법관이 전문가의 의견에 구속되지 않고 자체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심신장애로 인한 형의 감면여부가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고, 비슷한 형태의 범죄 사건에서도 법원의 심신미약 감경 판단이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법원이 어느 정도 기준이 모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치안행정논집에 실린 논문 ‘심신미약 살인범죄자의 양형 요인 분석’에 따르면 비슷한 유형의 범죄에서도 각 판사의 판단에 따라 형량은 크게 달라지는 경향을 보였다. 2018년 강원도 한 지역에서 여자 친구를 폭행해 살해한 20대 남성과 같은 해 서울에서 다툼 끝에 여자친구를 살해한 20대 남성은 각각 징역 4년과 20년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 모두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주장했지만 각 재판부는 달리 판단한 것이다.
다만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 사실이 인정된 경우에도 사건 범행의 동기와 경위, 수단과 방법,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정도에 따라 형의 감경을 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30년 넘게 조현병을 앓던 A 씨가 경기도 수원에서 칼로 자신의 자녀 신체를 약 10회 찌른 사건(살인미수)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나이 어린 자신의 아들을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힌 이 사건 범행은 그 죄질 이 좋지 않고, 피해자가 일주일간 대학병원에 입원하면서 두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상해의 정도도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만큼 전문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판사는 규범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정신감정을 하는 의사를 얼마나 믿을지는 재량에 달린 것으로 법원의 형량 감경이 다소 자의적이라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됐다”며 “판사의 판단은 존중돼야 하지만 전문가의 판단이 들어간 정신감정을 더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