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없이 차악 선택해야 할판
내년초 경기향방이 가늠자 될듯
알고 보면 정치만 한 막장 드라마도 없다. 지금 미국이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연방 특검, 뉴욕주 법원 대배심에 의해 잇따라 기소돼 법정에 서는 수모를 겪고 있다. 조지아주 지방 검찰로부터도 조만간 기소당할 처지다. 성추문 입막음, 선거 전복 기도, 기밀문서 반출 등 혐의내용도 다양하다.
역사상 처음으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고 있는 트럼프. 허구한 날 워싱턴, 뉴욕, 애틀랜타 법정에 불려다녀야 하는 그는 분명 한낱 피의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늘’의 트럼프일 뿐, ‘내일’의 트럼프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유죄 판결을 받고 철창신세를 지게 될지, 대통령에 두 번 당선되는 초유의 기록 보유자가 될지 예측불허다.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학이 공동으로 지난 달 실시한 지지율 조사 결과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대결에서 43% 대 43%로 동률을 이뤘다. 지난해 가을에는 트럼프가 오히려 바이든을 근소한 차이로 앞선다는 조사까지 나왔다.
2020년 대선 직후 플로리다로 떠나면서 터미네이터처럼 “곧 돌아올 것”이라던 그의 호언장담이 진짜 4년 만에 현실화되고 있으니 ‘트럼프 바람’을 가볍게 볼 일은 결코 아닌 듯싶다. 사실 지난 2016년 대선 때도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한 언론이나 정치분석가는 거의 없지 않았던가.
여론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고,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을 누리면서도 바이든은 선거판을 주도하지 못했다. 경제가 호전되고 있음에도 우호적인 조사에서조차 2% 이상의 차이를 내지 못하고 있다. 피의자 신분의 예비 후보를 상대로 거둔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성과라고 보기엔 형편없는 낙제 수준이다.
바이든의 지지 기반이 이슈에 민감하고, 유동적이라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야말로 요지부동,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그들은 더 이상 ‘샤이 보수’가 아니다. 365일 대문에 트럼프 지지 구호를 내거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지지층으로 변했다. 공화당 유권자의 37%를 차지하는 이들은 2016년 선거 때나 지금이나 한 치도 달라진 게 없다. 그들은 트럼프의 혐의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매우 강력하고, 열광적으로 그에게 러브 콜을 보내고 있는 세력이다.
반면, 바이든의 지지 기반은 박약하다. 넓어 보이지만 깊이가 없다. 지지자 가운데 30%는 민주당이 다른 후보를 뽑아 주길 바란다는 반응을 보였다. 설령 바이든이 되더라도 받아들이겠지만 열정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
법원에 들락거리는 바람에 트럼프의 내상도 컸다. 전형적인 트럼프 광팬이라고 할 수 있는 40대 백인 남성들에게조차 “공화당원이 아니라 범법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트럼프가 아닌 다른 후보를 찍을 것”이라며 등을 돌리는 모습을 봐야 했다.
바이든 지지자 가운데서도 성에 차지 않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탄식이 나온다. 2020년 대선 때 차악을 택했다는 한 50대 여성은 “이번에도 둘 다 맘에 안 들지만 범법자 트럼프를 찍을 수 없으니 바이든을 찍을 수밖에 없지 않냐”며 하소연이다.
안개 속 대선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인 변수는 무엇일까. 이번에도 답은 경제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바이든 캠프는 매우 낙관적이다. 취임 이후 각종 지표들이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도 한풀 꺾였고, 투자와 일자리가 늘고 있다. 2분기 성장은 2.4%를 기록해 학자들의 예상을 웃돌았다.
특히 한국과 같은 대표적인 우방국의 손목을 비틀어가면서까지 첨단 제조 공장을 대거 유치한 데 대해 유권자들은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과연 바이드노믹스는 재선의 길을 터 줄 것인가. 이래 저래 내년 초 경기 향방이 선거 풍향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Wanseob.k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