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대형 금융사고나 내부 직원 일탈이 반복될 경우 최고경영자(CEO)까지 책임을 물리는 입법 작업에 속도를 낸다. 최근 은행권에서 수백억원대 횡령 및 고객 계좌 무단 개설 등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가 잇따르자 법 시행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취지다.
13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부통제 관련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통상 의원 입법은 정부 입법보다 법안 처리 속도가 빠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내부통제 관련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해두는 ‘책무 구조도’ 도입이 핵심이다. 특히 책무 구조도에는 CEO의 책임도 명시된다. 대형 금융사고나 횡령 같은 조직적·반복적 사고 시 CEO도 문책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등만 명시돼 있고 임원별 구체적 책무가 정해져 있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개정안은 임원별 책무를 구체적으로 지정해 문서화하도록 했다.
최근 경남은행에서 500억원대 횡령이 발생한 데 이어 KB국민은행 직원들은 업무상 알게 된 고객사들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7억원 규모의 주식 매매 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은행 중 처음으로 시중은행 전환을 노리고 있는 DGB대구은행은 고객 몰래 문서를 꾸며 증권계좌 1000여개를 개설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모두 내부통제 시스템을 통해 걸러지지 못하고, 외부 민원이나 수사를 통해 덜미가 잡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만약 책무 구조도가 사전 도입됐더라면 최근 터진 사건들에 대해 내부통제 실패 책임을 더 간명하고 명확하게 물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여부만을 근거로 제재를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내부통제를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조치를 했는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을 따져볼 수 있다”며 “훨씬 상식적인 수준의 ‘내부통제 실패’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