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p 금리인상 전격발표
그간 꺼려왔던 페소 평가절하 카드도 꺼내
'아르헨 트럼프' 밀레이 후보, 중앙은행·폐소 폐지 주장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아르헨티나가 치솟는 물가와 정치 혼란에 기준금리를 한 번에 21%포인트(p) 인상하고 자국 통화인 페소 가치도 두 자릿수로 평가절하했다.
14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BCRA)은 “이사회가 기준금리를 21%p 인상할 것을 의결했다”고 공표했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 기준금리는 단숨에 종전 97.00%에서 118.00%로 오르게 됐다.
아르헨티나의 기준금리가 100%를 넘긴 것은 1980∼1990년대 경제 대위기 이후 처음이다. 한 번에 21%p에 달하는 인상 폭도 21년 만에 처음이다. BCRA는 또한 이날 달러·페소 환율이 10월 대선 전후까지 350페소로 고정될 것이라고 고시했다. 이는 달러 대비 페소 가치를 약 18% 평가절하한 것이다.
BCRA의 이번 조치는 급등하는 물가 대응과 함께 전날 대통령 선거 본선을 앞두고 치러진 예비선거(PASO) 결과로 혼란에 빠진 시장을 진정시키려는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날 제1야당 보수연합의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53)는 30.0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20%에 못 미치는 득표율을 얻을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극우 정당 후보가 예비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간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로 중도우파 ‘변화를 위해 함께’와 현 집권세력인 좌파 ‘조국을 위한 연합’ 소속 후보가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었다.
중도 성향 인물의 당선을 점쳐왔던 시장은 예비선거 결과에 충격에 빠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미국증시에서 아르헨티나 주식과 연동되는 ‘글로벌X MSCI 아르헨티나 상장지수펀드(ETF)’는 6% 넘게 급락하며 1년여 만에 최악의 낙폭을 기록했다. 달러 표시 아르헨티나 채권 가격도 7% 빠졌다.
일각에서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패닉 버튼’을 누른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지지율을 의식해 이전 정권보다 강력한 복지와 보조금 정책을 펼쳐왔다. 중앙은행은 정부 방침에 따라 ‘돈 찍기’로 재정 적자를 메웠다. 그 사이 물가는 치솟고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아르헨티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6월 전년 동월 대비 115.6% 뛰었다. 이는 30년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말에는 가뭄으로 인한 곡물 생산 감소로 CPI 상승률이 160%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은 10월 22일 치러지는 아르헨티나 대선을 주시하고 있다. 밀레이 후보는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미국 달러를 공식 통화로 채택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또한 급격한 지출 삭감과 적자 공기업의 민영화를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의 공약이 극심한 금융 혼란을 촉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는 또 사회 문제 측면에서는 유연한 총기 소지와 장기 매매 합법화를 지지하며, 낙태를 반대해 ‘아르헨티나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