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주변의 수해피해를 항구적으로 방지하고 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16개의 보를 구축했다. 110개소의 저수지는 둑을 높여 물그릇을 크게 했다. 강 주변의 상습적 침수나 홍수피해를 방지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지류와 지천을 추가로 정비해 집중호우 등 재해에 대비해야 했으나 하지 못했다.
번 집중호우 피해는 가히 재난 상황이다. 재난으로 망연자실해 있는데 일부 정치인의 부적절한 대응과 구설수는 더욱 가슴 아프다. 재난을 두고 갑론을박하기보다 몇가지 대응 원칙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첫째, 재난의 정치적 이용을 금해야한다. 특히 불가항력적 자연재해를 정치적 공격 빌미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 '재난의 정치화'를 중단해야 한다. 또 '정부와 공무원이 모든 재난을 다 책임지겠다는 것은 안된다'는 재난 전문가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재난현장에 보여주기식 정치인 방문을 자제해야 하며, 재난의 정치적 이용에 엄중 경고를 해야 한다. 재난 대비에 여야가 따로 없다.
둘째, 재난 대응 기본 수칙을 지키자. 기본 원칙은 '선조치 후보고' 이다. 재난이나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상급부서 보고에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다. 막상 현장의 시급한 조치는 뒤로 밀린다. 휴전선에서 각종 사고가 나면 모든 관심은 '대통령에게 언제 보고됐나'에 초점을 맞춘다. 잘못된 대응이다. 보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의 긴급조치이나 잘 지켜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가용한 자원으로 선 조치를 실시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지키자.
셋째, 실용적인 재난 대응 장비를 갖추자. 화재나 재해에 대비한 메뉴얼은 다 갖춰져 있다. 그러나 막상 상황이 발생하면 매뉴얼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세계적인 등산가에게 들은 이야기다. 자신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밧줄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돌돌 말면 주먹만 한 크기의 밧줄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 어떤 상황에도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용적인 재난 장비다.
필자의 경험이다. 연초에 폭설로 많은 비닐하우스가 파손됐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되는 채소류 공급 차질이 우려돼 부랴부랴 민 방위복을 입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무너져 내린 하우스 시설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철골로 뼈대를 세운 하우스 시설이다. 철거 장비 없이 출동해 찢어진 비닐만 줍다가 돌아온 씁쓸한 장면이었다. 최근 수해 피해현장에 긴급 출동한 군인이 철모를 쓰고 총을 들고 나타난 장면을 봤다. 어안이 벙벙했다. 간편한 작업 모자를 쓰고 수해대비 장비를 가지고 출동해야하는 게 아닌가! 시급히 현장 출동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넷째, 대형 재난은 총괄하는 부처가 필요하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 자연재해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한 국토안보부(Dept. of Homeland Security)를 설치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재난에 대비 '국민안전처'를 설치했으나 3년 만에 폐지됐다. 기후변화와 기상 이변으로 대형 재난은 수시로 올 수 있다. 재난급 침수피해가 발생했으나 부처 간 소관 다툼과 비협조로 여러 부처 공직자가 처벌 받는 오송 지하도 침수사태를 명심해야 한다. 다소 비효율적 측면이 있더라도 대형 재난을 총괄하는 기관이 주도가 되어 대응을 해야 한다.
다섯째, 우리나라는 전국이 '재난 지뢰밭'이다. 홍수, 화재, 교통사고, 건축물 붕괴, 해상사고 등 원인과 형태도 다양하다. 작은 재해 위험시설을 조심해야한다. 전국에 1만7080개의 저수지가 있다. 이중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대형 저수지가 3428개이다. 대부분(87%)이 건설된 지 50년 이상으로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 준설이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돼 집중 호우에 매우 취약하다. 지진위험에 놓여있는 저수지도 많다. 2017년 9월 경주 일대의 지진으로 붕괴된 저수지를 보며 아찔했다. 다행히 소규모 저수지라 피해가 크지 않았다. 대형 저수지가 국지적 집중 호우나 지진으로 붕괴되면 도시를 휩쓰는 엄청난 재난이 된다. 대형 재난은 작은 위험 시설부터 대비해야 한다. 재난대책을 공직자 '목치는 행정'에서 탈피하자. 재난대비는 원칙을 지키고 메뉴얼과 탁상이 아닌 현장 실용적 방안으로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