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투자로 다양한 백신 개발…생산공정 자동화로 품질 유지 노력
"흔히 동물백신하면 반려동물 백신을 먼저 떠올릴 것 같은데요, 사실 백신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동물은 돼지입니다. 그 뒤를 이어 닭, 그리고 소 백신 시장이 있고 다음에 반려동물 백신시장이 뒤따르고 있죠."
반려인 1500만 시대가 되면서 동물 백신이라고 하면 반려동물을 위한 백신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동물의 질병 예방을 위해 필요한 백신은 가축용 시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집에서 가족처럼 키우는 반려동물과 달리 대규모 사육 구조를 가진 가축은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다. 또 소와 돼지, 닭 등 가축이 이제는 대규모 산업으로 전환하면서 가축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대전에 자리잡은 중앙백신연구소에서 만난 원호근 해외사업본부장은 동물백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원 본부장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동물백신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등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가축들이 백신을 통해 위험한 질병으로부터 지켜졌기 때문"이라며 "동물들의 활동 공간 안에는 다양한 세균과 바이러스들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백신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동물 백신과 의약품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원 본부장은 "반려동물 증가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육류 소비가 증가하는 반면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등 악성 질병도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어 동물 백신과 의약품에 대한 필요성을 갈수록 커질 것"이라며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질병에 대응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고, 신약도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어 시장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물백신 시장에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앙백신연구소는 1968년 설립됐다. 현재 돼지 백신 '수이샷®', 닭 백신 '포울샷®', 반려동물 백신 '캐니샷®', '펠리샷®' 등을 비롯해 70여 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개발한 수많은 백신 가운데 가장 큰 성과를 가져온 것 중 하나는 'PED' 제품이다. PED란 '돼지 유행성 설사병(Porcine Epidemic Disease)'으로 1990년대 초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도 돼지농가에 큰 피해를 주는 질병 중의 하나다. PED가 발생하면 자돈(새끼돼지)은 거의 폐사한다.
원 본부장은 "2014년부터 PED 바이러스 변이주(G2b형)가 전국으로 퍼지며 양돈 농가에 큰 피해를 주기 시작했고, 기존 백신으로는 예방에 한계가 있어 새로운 백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며 "이에 중앙백신연구소는 2015년 국내 최초로 PED G2b형 불활화 백신 'PED-X'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PED-X는 출시 이후 현재까지도 새로운 변종 PED의 효과적인 예방책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후 국내 연구진과 공동 연구를 통해 PED G2b형의 경구용 생독백신 'PED-X Live'의 품목허가도 세계 최초로 취득해 2020년 국내에 출시하기도 했다.
중앙백신연구소가 이처럼 국내 백신 업계에서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과감한 투자와 도전이다. 급변하는 질병 상황을 파악하고 알맞은 백신을 제때 제공하기 위해 매년 매출의 약 10% 정도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원 본부장은 "올해 상반기에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새로운 변이주를 방어하는 백신인 '포울샷® 플루-Y280'을 국내 최초로 출시해 관심을 받았고, 하반기에도 양계 백신인 '포울샷® 아데노 3가' 및 '포울샷® 5280 ABBNE' 출시를 앞두고 있다"며 "지난해 하반기에는 가장 최신 바이러스를 사용한 개 인플루엔자 백신 '플루백스 H3N2'가 출시돼 많은 동물병원에서 사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생산 설비와 시설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2017년에는 충남 논산에 조류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전문 제조시설을 추가로 완공했고, 2021년에는 생산시설의 확대를 위해 대전 본사의 제조시설을 증축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아무리 좋은 백신이 있더라도 이를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때문에 적극적인 백신의 활용이 필요하다. 최근 충북 청주와 증평에서 발생한 구제역도 백신 접종과 같은 예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 본부장은 "당장 눈에 보이는 질병 문제가 없다면 대비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느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질병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주요 질병에 대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백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꾸준한 투자를 통해 얻은 중앙백신연구소의 백신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PED 백신 중 하나인 '수이샷®'은 해외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이 외에도 해외 20여 개국으로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1993년 태국과 파키스탄으로 백신 수출을 시작해 2019년에는 '1000만 달러 수출 탑'을 수상했고, 2020년에는 국내기업 최초로 IHS마킷의 'Animal Health Award'에서 '아시아 최고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2021년도 수출·안전 분야 유공 포상 시상식'에서 '동물약품 수출업체상(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올해 3월에는 태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축산박람회인 'VIV ASIA'에 참가하는 등 해외 시장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 중앙백신연구소의 주요 수출국은 태국과 베트남이다. 양돈 백신을 중심으로 지난 10여년 간의 매출은 상승세에 있다. 원 본부장은 "여러 수출 추진 국가 중 중국과 브라질을 향한 양돈 백신 수출에 심혈 기울이고 있다"며 포부를 나타냈다.
정부도 백신을 비롯한 동물용의약품을 수출 유망품목으로 인지하고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나섰다. 중동과 동남아 등 주력 시장에서는 신규 바이어 발굴을 위한 해외전시회 참가를 지원하고, 유망 국가에 대해서는 네트워크 구축과 시장개척단 파견을 추진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의약품 등의 안전성·유효성을 보장하는 관리기준인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에 부합한 수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올해 2억5000만 원의 예산으로 컨설팅을 지원한다.
하지만 관리가 엄격한 의약품 수출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특히 어려운 부분은 제품 등록이다. 원 본부장은 "국가별로 의약품 제조를 위한 허가 장소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각 국가별 기준으로 현장실사를 진행하고, 이를 GMP audit이라고 부르는데, 이 GMP의 국제 기준은 시간이 갈수록 지속적으로 상향되기 때문에 투자를 많이 한다 해도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며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제품 등록 자체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제작지원: 2023년 FTA이행지원 교육홍보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