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지 금리 기준 5년물은 동결
0.15%p 인하 기대했던 시장에 ‘찬물’
“전반적 부동산 시장 구제 기조와 맞지 않아”
씨티그룹, 중국 성장률 목표 4.7%로 낮춰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민은행은 이날 1년 만기 LPR를 종전의 연 3.55%에서 3.45%로 0.1%포인트(p)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5년 만기 LPR는 연 4.2%로 종전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인민은행이 LPR 인하에 나선 것은 2개월 만이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8월 이후 동결했던 1년 만기와 5년 만기 LPR를 6월 각각 0.1%p씩 인하했고, 지난달에는 동결했다. LPR는 중국 내 주요 18개 시중은행이 보고한 최우량 고객 대출 금리의 평균치로, 인민은행이 매달 공표하는 사실상의 기준금리로 통한다. 인민은행은 LPR를 낮추거나 높여 고시하는 방식으로 시중금리를 조절해왔다.
이번 조치는 시장의 예상에 크게 벗어나는 결정이다. 전문가들은 인민은행이 1년물과 5년물 LPR 모두 0.15%p 인하해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큰 폭의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었다.
특히 인민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최근 일주일새 분주히 움직였던 만큼 시장의 기대감은 컸었다. 인민은행은 15일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금리와 1년 만기 중기 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 등 주요 정책금리를 잇달아 내렸고, 16일에는 7일물 역레포 계약을 통해 2970억 위안(약 55조 원)의 현금을 시장에 투입했다. 이후 18일에는 금융당국과 화상회의를 열고 금융기관들에 경제 회복을 위해 대출을 확대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민은행은 막상 가장 중요한 LPR 금리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최근 부동산 침체에도 인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의 기준점이 되는 5년 만기 LPR를 동결했다는 점에 의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주뉴질랜드뱅킹그룹(ANZ)의 레이먼드 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년물 LPR 동결은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 구제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다”면서 “동결 조치의 정책적 메시지는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줄리안 에반스-프리처드 이코노미스트는 “MLF 금리 인하에서 LPR로 이어지는 실망스러운 후속 조치는 인민은행이 신용 수요를 살리는 데 필요한 상당한 폭의 정책금리 인하를 수용할 가능성이 작다는 시장의 관측을 강화한다”면서 “결론은 통화 완화 조치가 부채가 있는 기업과 가계에 약간의 안도감을 줄 수는 있지만, 경제 성장세가 바닥을 치고 올라가도록 하는 데에는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LPR 발표 후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들은 ‘정책에 대한 실망’을 이유로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정부 공식 목표인 ‘5% 안팎’보다 낮은 4.7%로 하향 조정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5년물 LPR 동결 조치에 대해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접근을 신중하게 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피력한 것이란 관측을 제기했다. 존스랑라살의 브루스 팡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당국이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시중은행들의 이자 마진 축소와 수익성 저하도 인민은행이 금리 인하 폭을 확대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련의 조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경제의 문제점이 자금 공급 부족이 아닌 낮은 신용 수요에 있기 때문이다. 7월 위안화 신규대출은 전년 동월 대비 50% 급감했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상하이가 봉쇄됐던 2022년 4월(56%)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아무리 금리가 낮아져도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기업과 가계가 돈을 빌리기를 꺼리는 것이다.
싱가포르 화교은행(OCBC)의 프란시스 청 금리 전략가는 “중국 정책 당국자들이 5년물 LPR 금리 인하가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면서 “규제 당국이 부동산 부문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 더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수진작을 위해 통화정책 외에 소비자들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재정적자 목표에 집착하고 있고, 부양책이 자칫 ‘복지주의’ 함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민은행과 별개로 이날 중국 당국은 자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지방정부 부채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1조5000억 위안 규모의 특별 재융자 채권 발행을 허용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