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41개월째였던 2016년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하며 온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받았던 백 군은 올해 초 만 10살의 나이로 서울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또 한번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런데 불과 1년도 안돼 백 군이 학교를 그만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백 군은 이달 18일 돌연 자퇴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백 군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문제를 푸는 기계가 돼 가는 자신을 보게 됐다”며 같은 반 ‘형, 누나’들에겐 “귀염둥이 백강현이 이제 떠난다”고 아쉬움을 표했죠.
그러나 하루 뒤, 백 군의 아버지 백 모 씨가 “어린 강현 군이 감당하기 힘든 놀림과 비인간적인 학교폭력”이 있었다고 폭로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현재 백 군의 자퇴 사유가 명확히 드러난 건 아니지만, 그의 행보는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영재 육성 프로그램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영재에 대한 실효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냐는 겁니다.
과거 8살의 나이로 대학에 입학한 송유근(25) 씨는 과거 IQ 187의 천재로 불리면서 미디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5살 때 대학 수준의 미적분을 풀고 7살 때 양자역학을 이해하는가 하면, 8살의 나이에 정보처리기능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화제가 됐는데요. 초등학교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친 뒤 검정고시를 거쳐 최연소 나이로 대학에 합격했죠.
어린 나이에 대학 생활을 시작한 그는 대학 과정을 다 마치진 못했습니다. 부적응을 이유로 2년 만에 대학을 그만둔 겁니다. 그러나 12살이던 2009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한국천문연구원 석박사통합과정에 입학했고, 2015년에는 최연소 박사가 된다는 소식을 전하며 또 한 번 놀라움을 자아냈죠. 송 씨는 그해 ‘일반상대성이론의 천체물리학적 응용’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2015년 후기 학위청구논문으로 제출했습니다. 논문이 통과한다면 만 18세의 나이로 우리나라 최연소 박사 타이틀을 얻게 되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미국천체학회는 송 씨의 논문이 표절이라며 논문을 철회했습니다. 송 씨는 졸업을 위한 박사 학위 논문 최종 심사에서도 불합격하면서 졸업 연한인 8년 내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해 제적 처분됐습니다.
송 씨 측은 ‘공식 등록한 논문이 아닌 참고문헌이기 때문에 일부 내용을 썼더라도 인용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다’고 반발했고 제적 처분 취소 청구 소송도 냈지만, 법원은 대학의 제적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송 씨보다 먼저 천재라 불린 이도 있습니다. 김웅용(61) 신한대 교수는 1966년, 3살 나이에 미적분을 풀고 4살엔 IQ 210을 기록하며 당시 세계 최고의 천재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5살 땐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8살 땐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의 주장에 따르면 8살의 나이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나사) 초청으로 콜로라도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1974년부터 나사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타지살이를 시작한 김 씨는 극심한 회의를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귀국을 택했는데요. 미국 물리학 박사 학위과정 수료증과 나사 선임연구원 근무 이력도 한국에서는 별다른 이력으로 작용하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졸업장이 없었기에, 검정고시를 봐야 했죠.
김 교수의 과거 행적이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당시 사회가 그를 ‘몰락한 천재’라고 조롱한 건 사실입니다. 한국 영재 교육의 폐단 사례로 그를 거론하기도 했죠. 김 교수는 2014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천재라고 불리기 싫었다”며 “평범하게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렇듯 영재를 ‘잃은’ 경험이 있는 대중은 백 군의 자퇴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의 영재 교육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2000년 영재교육진흥법을 제정하고, 2002년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20여 년 전부터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영재교육은 영재성이 사장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취지를 지녔는데요. 3월 교육부는 ‘제5차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했습니다.
과학고를 설립하기 시작한 건 40년이 넘었습니다. 과학고는 20개로, 영재학교는 8개로 늘어났죠. 영재교육 대상자도 지난해 기준 7만2518명, 담당 교원도 1만8340명으로 집계됐는데요. 교육 대상자가 전체 학생 약 1.4% 수준인 상황입니다.
6월 ‘영재교육의 내일을 생각한다’ 주제로 진행된 제211회 한림원탁토론회에서는 현 영재 교육 기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현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영재교육연구원장은 “지난 20년간 ‘누가 영재냐’ 하는 잘못된 질문에 잘못된 해답만 열심히 찾았다”며 “자신에게 맞지 않는 교육을 받아 힘든 영재라면 교육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누가 영재냐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사교육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여 년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학생대표단을 이끈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는 과학고와 영재학교 수가 너무 많고 학생 선발 방식과 대상자 등 차이가 난립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일부 과학고만 일류로 인정받고, 다른 학교들이 이류, 삼류로 치부되는 폐해도 나타난다고도 했는데요. 그는 “수학올림피아드를 예로 들면, 대표 선발전 상위 100명 중 중학생 30명을 제외하면 거의 서울과학고 학생”이라며 “지금 상황은 과다한 동종교배고, 전국 28개 학교가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 원장은 “과학고와 영재학교의 명확한 차이점이 없고 교육도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며 “국가에서 2개 기관을 유지할 거면 명확하게 역할 차이를 두고 운영해야 다양한 수준 교육이 제공되고 목적도 명확해질 것”이라고 짚었죠.
특히 교육 기관의 양적 발달에 비해 정서적 교육 부분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른바 신동, 천재라 불리는 아이들이 또래와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정서적으로 위축되고 동기의식이나 의욕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인데요. 한 번 영재로 선발되면 국가나 사회가 기대하는 성취를 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등 부담감도 더해져 강박에 시달리거나 우울증 등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계 최초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고등과학원 석학교수)는 ‘제2의 허준이가 나오기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젊은 과학자에게 단기적 목표를 추구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자유롭게 즐거움을 쫓으면서 장기적인 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만한 여유롭고 안정감 있는 연구 환경이 제공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제안대로 단기적 성취, 대칭적 능력만을 추구하는 환경보다는 개인 특성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실시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인구 절벽과 산업 기술 인력 부족이라는 위기 속, 이공계 인재 양성이 시급한 과제라는 점까지 감안했을 때 현 영재 교육에 대한 재정비도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