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종은 되고, 조선·최원종은 안 된다?…흉악범 가르는 이것 [이슈크래커]

입력 2023-08-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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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공개한 신림동 성폭행 살인범 30세 최윤종(왼쪽), 신림동 흉기 난동범 33세 조선. (출처=서울경찰청 제공,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해 숨지게 한 피의자 최윤종(30·구속)의 신상정보가 공개됐습니다.

서울경찰청은 23일 오후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최윤종의 이름과 나이, 사진을 공개했는데요. 최윤종이 흉기를 구입하고 범행 장소를 물색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고, 공개된 장소에서 불특정 여성에 성폭행을 시도해 사망하게 한 사실 등에 비춰 범행의 잔인성과 피해의 중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런데 눈길을 끈 건 공개된 사진이 신분증 속 사진이 아닌, 체포 이후 경찰에 의해 촬영된 ‘머그샷’(mug shot)이었다는 겁니다.

머그샷은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얼굴을 식별하려고 구금 상태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입니다. ‘큰 컵’이라는 ‘머그’(mug)가 18세기부터 ‘얼굴’을 일컫는 속어로 사용된 데서 유래했는데요. 19세기 미국의 탐정이었던 앨런 핑커턴이 현상 수배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입했다고 합니다. 이름표, 수인번호를 든 피의자의 얼굴을 찍은 사진은 수용기록부에 등재되죠.

우리나라에서 피의자의 머그샷이 공개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지금까지 머그샷이 공개된 경우는 최윤종까지 포함해 두 건 정도밖에 없는데요. 최근 잇단 흉악 범죄에 ‘흉악범 인권을 과잉보호해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머그샷의 공개 기준부터 이를 둘러싼 논란까지 살펴봤습니다.

▲경찰이 공개한 신림동 흉기난동범 33세 조선(위), 분당 흉기 난동범 22세 최원종. (사진제공=서울경찰청)
조선·최원종은 왜 공개 안 됐나…머그샷, 논점은 피의자 ‘동의’ 여부

현행법상 신상 공개 관련 세부 규정은 특정강력범죄처벌특례법(특강법)에 있습니다.

이는 피의자의 얼굴 사진을 포함한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 알권리 보장과 재범 방지·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데요.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신림역 흉기 난동범 조선(33), 분당 흉기 난동범 최원종(22)도 특강법이 정한 신상 공개 요건에 부합해 이름과 나이 등 신상정보가 공개된 바 있죠. 그러나 이들은 최윤종과 달리 머그샷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들이 머그샷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죠.

특강법엔 머그샷 촬영과 공개에 대한 규정이 없습니다. 얼굴 공개 여부 조항만 담겨 있고, ‘사진 촬영’이라고 명시된 부분이 없다는 건데요. 2019년 법무부가 내린 ‘현행법상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는 있지만, 피의자가 사진 촬영을 거부할 경우 촬영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사실상 유일한 규정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피의자 동의를 얻어 촬영한 사진을 공개할 수 있다’는 경찰청 훈령도 수사 과정에서 확보했거나 피의자 동의를 얻어 촬영한 사진, 영상물만 공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현행법상 머그샷 촬영과 공개를 강제할 법적 조항이 전무한 실정이라는 겁니다.

조선, 최원종은 머그샷 촬영을 거부했고, 경찰은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사진,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폐쇄회로(CC)TV 화면 캡처본 등을 배포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증명사진, 피의자 현재 모습과 괴리감 커…‘머그샷의 나라’ 미국은 어떨까

최윤종 이전 머그샷이 공개된 사례는 2021년 교제하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27살 이석준이 유일합니다.

피의자가 머그샷 공개에 동의하지 않은 경우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의 사진이 공개돼 왔는데요. 사실 신분증 사진은 화질이 안 좋거나, 너무 오래전 찍은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포토샵이 더해져 현재 모습과 차이가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되는데요. 실로 남편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고유정,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 또래 여성 살인범 정유정 등 실물과의 괴리감이 커 논란이 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고유정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다 가린 채 법정에 출석했고, 전주환도 검찰 송치 과정에서 드러난 얼굴과 증명사진이 너무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정유정의 증명사진이 공개됐을 땐 고교 동창들도 그를 못 알아봤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신상 공개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도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머그샷을 시행하는 대표적인 나라인데요. 피의자에게 머그샷 촬영에 대한 ‘선택권’을 주지 않는 게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어떤 범죄를 저질렀든, 피의자로 조사받을 경우 머그샷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유명인들의 머그샷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일도 잦죠. 1977년 뉴멕시코주에서 운전면허증 미소지 및 신호 위반으로 체포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활짝 웃는 머그샷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키아누 리브스, 가수 저스틴 비버도 무면허 운전 등을 이유로 머그샷을 촬영한 바 있습니다. 머그샷을 찍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 입원한 피의자’ 정도로 제한돼 있습니다. 피의자의 인권보다 시민의 알 권리를 우선하는 이유에서입니다.

▲3일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이 1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성남수정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피의자 인권, 공공이익보다 우선인가” 지적 나오지만…국회 계류 중인 법안들

최윤종의 머그샷은 최근 사진이긴 하지만, 체격이나 신체적 특징은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신분증 사진과 비슷한 구도에, 정면 얼굴이 강조된 탓입니다.

미국에선 정면, 측면 얼굴이 담긴 사진을 머그샷으로 공개하고, 눈금 배경에 피의자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 체격도 알 수 있도록 합니다.

이 같은 사례가 비교되면서 피의자 동의에도 불구하고 신분증 사진과 비슷한 정면 사진 한 장만 공개하는 건 실효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회엔 흉악범의 머그샷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아직 계류 중입니다. 법제사법위원회 법한심사제1소위원회는 중대범죄 피의자의 머그샷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특강법 개정안과 피의자 신상 공개에 관한 제정안 등을 심사 중인데요. 법률안마다 공개 대상 범죄나 공개 범위·방법 등엔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이 피의자의 최근 30일 이내 모습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엔 피의자가 직접 얼굴을 공개할 때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피의자 인권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고 시민의 알 권리와 법 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는 실정을 개선하자는 취지죠.

그러나 이 같은 법안들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권단체의 반대도 있는 터라 국회를 언제 통과할지 가늠할 수 없는데요. 최근 잇단 흉악범죄로 시민의 일상도 극심한 위협을 받는 만큼, 머그샷 의무화 등 보다 공격적인 신상 공개에 대한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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