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직접 개입하진 않았지만, 사회통념상 고용관계 지속 불가"
현대판 음서제로 불린 2017년 '우리은행 채용비리' 사건으로 부정하게 입사한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해고를 철회하라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30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8민사부(재판장 김도균 부장판사)는 우리은행 직원 A 씨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A 씨가 1차 면접 불합격권임에도 우리은행 모 지점장의 딸이라는 배경과 임직원들의 부정한 채용 청탁으로 인해 공개채용에 선발돼 우리은행에 입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A 씨는 합격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채용비리라는 부정행위를 통해 직업적 안정과 보수라는 이익을 상당 기간 향유했다"며 "그로 인해 다른 합격 가능 대상자는 불합격이라는 결과와 채용 준비를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기회가치 상실이라는 커다란 경제적ㆍ정신적 손해를 입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공정한 과정을 통해 우리은행에 채용된 것은 그 자체로 근로관계의 기초인 A 씨와 우리은행 간 신뢰관계의 중대한 훼손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 해고에는 정당한 이유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우리은행 채용비리로 합격한 직원들 18명 중 10명은 권고사직 면담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갔다. 반면 A 씨를 포함한 8명은 회사의 권고사직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우리은행은 2021년 2월 A 씨에게 "채용절차의 공정성과 회사의 명예ㆍ신용이 심각하게 실추됐다"며 해고를 통보했다. A 씨 측이 불복하고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위와 같은 사유로 이를 배척했다.
한편 채용비리로 입사한 우리은행 직원들의 해고 무효 소송에서 재판부마다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3부는 지난해 8월 우리은행이 부정한 방법으로 입사한 직원을 해고한 것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채용 과정에 부정한 개입이 있었지만, 채용된 직원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으므로 귀책 사유가 없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 역시 A 씨가 채용비리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고, 우리은행 인사규정에 직접 위배되는 행위를 하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우리은행과의 근본적인 신뢰관계가 훼손되는 등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A 씨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인정된다"며 우리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판결은 지난 4월에도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13부는 전 우리은행 직원 B 씨가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B 씨의 아버지가 우리은행 고위직과 상당한 친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B 씨도 알고 있었고, 채용을 암묵적으로나마 기대했을 것(미필적 고의)이라는 취지의 판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