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국 통큰결단…개혁 이끌 수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에 일어난 일이 우크라이나에도 가능할까?’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 가능성과 시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6월, EU 27개국은 우크라이나에 가입 후보국 지위를 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침공한 게 그해 2월 24일. 한 달 후 우크라이나는 EU 가입을 신청했고 EU 회원국 수반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는 세 달이 지나서 결정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우크라이나가 가입 후보국이 됐을 때 유럽의회의 한 의원은 ‘가장 값싼 선물’이라고 혹평했다. 돈 한 푼도 안들이고 무척 큰 것을 준 것처럼 포장됐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특정 국가가 EU 가입을 신청하면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가 꼼꼼하게 사전 조사를 한다. 신청국이 가입 준비가 돼 있는지를 삼권분립 체제와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살펴본다. 이 과정도 최소한 평균 2~3년 걸린다.
우크라이나는 가입 신청 후 불과 3개월 만에 가입후보국 지위를 얻어냈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자유주의 세계를 대표한다고 여겨진 이 나라를,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사이에 있는 몰도바도 같은 시기에 EU 가입을 신청했고 우크라이나와 동시에 후보국 지위를 받았다. 몰도바도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고 민주적 개혁을 꾸준하게 실행해온 친서방 국가다. 반면에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2016년 2월에 EU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거의 7년이 지난 2022년 말에 후보국이 됐다. 집행위원회는 사전 조사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민주주의적 개혁을 더 지속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우크라이나는 EU 역사상 최단기간 안에 가입후보국이 됐다. 10월 열리는 유럽이사회에서 회원국 수반들은 우크라이나와 가입 협상을 개시할지를 논의하고 올해 안에 결론을 낸다. 하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유럽통합에서 비슷한 사례인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의 경우를 한 번 보자.
그리스에서는 1967년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했고 이 독재는 1974년에 종식됐다. 스페인의 경우 프랑코의 독재가 1949~1975년까지 36년간이나 지속됐다. 그리스는 군사 정부 몰락 이듬해인 1975년에 유럽공동체 가입을 신청해 4년 만에 가입조약에 서명했다. 스페인의 경우도 1977년에 유럽공동체 가입을 신청해 1986년에 회원국이 됐다. 1974년에 독재자를 몰아낸 포르투갈도 동일한 과정을 밟았다.
집행위원회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민주주의 이행의 초기 단계이고 시장경제도 확립되지 않아 가입 협상 개시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스페인 및 포르투갈과의 협상 시작을 적극 지지했다.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을 내버려 둔다면 두 나라가 민주주의 이행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봤기에, 슈미트를 비롯한 당시 회원국 지도자들이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위의 예처럼 우크라이나의 EU 가입도 지정학적 필요성은 너무나 명확하다. 우크라이나를 더 이상 회색지대로 남겨 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U는 경제·정치블록으로 러시아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나토와 같은 집단안전보장체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면 간접적인 안전보장을 얻는 셈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EU가입에는 여러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우선 폴란드가 양보할 수 있을까? EU예산의 3분의 2 정도가 농민과 낙후된 지역 지원에 나간다. 폴란드는 EU 회원국 가운데 농민 비중이 8.4%로 EU 평균보다 2배가 높고 낙후된 지역이 많아 EU 예산에 납부한 것보다 2.5배나 더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의 경우, 폴란드는 EU예산에 74억 유로를 납부했으나 EU로부터 187억 유로를 지원받았다.
우크라이나의 농민 비중은 14%로 폴란드보다 1.7배가 높다. 유럽의 곡창지대라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농토는 이탈리아 국토보다 넓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한다면 폴란드는 EU 예산의 가장 큰 수혜국에서 벗어나, 주요 기여국으로 바뀐다. 따라서 기존 EU예산 지출을 획기적으로 변경해 농민과 낙후 지역 지원을 크게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기존 지출 방식을 계속 유지하려면 2023년 EU 예산 1686억유로(약 234조원)보다 2배 정도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EU예산의 3분의 2는 회원국의 경제력에 비례한 분담금으로 충당된다. EU 최대 경제대국 독일이 기존 EU 예산 지출보다 2배나 더 많은 부담을 기꺼이 껴안을 수 있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외교안보정책에 회원국들이 거부권을 행사한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아직도 친러정책을 유지하며, 대러시아 원유 수입금지를 끝까지 반대했다.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는 기본적으로 친서방국가이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친러 성향이 강하다. 신규 회원국이 많아질수록 EU의 정책결정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인 2021년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 인식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122위를 차지해 러시아 다음으로 유럽에서 부정부패가 심각했다. 기존의 가입 기준을 따른다면 우크라이나의 EU가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예처럼 어려움에 처한 국가를 EU로 받아들여 개혁을 지속하게 지원과 압박을 계속한다는 통 큰 결단이 있다면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다.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길고도 먼 여정이 될 듯하다. opinion@etoday.co.kr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