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주식회사 한국’에서 ‘팀 코리아’로 전환할 시점”

입력 2023-09-0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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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동반성장포럼 100회 맞아
“납품대금 연동제 계속 보완 필요”
“원천기술 투자 기업에 세제혜택 줘야”
“ESG와 동반성장 궤를 같이하는 것”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4일 서울 관악구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동반성장은 시대정신이다. 이제는 ‘주식회사 한국’에서 ‘팀 코리아’로 전환할 때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바 있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서울 관악구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이뤄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과거에는 한국 경제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국가 전체를 하나의 기업인 것처럼 비유하곤 했다. 그런데 국가를 기업에 비유하다 보니, 당연히 큰 기업처럼 부각되고 재벌 대기업 정책이 더 효율적인 것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균형 잡힌 경제 정책을 저해하는 요소가 됐다는 분석이다.

정 이사장은 "이제는 ‘팀 코리아’가 되어 대기업과 함께 협력 중소기업도 상생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아갈 때"라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 해결은 물론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반성장연구소는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정 이사장이 동반성장위원회를 그만둔 후 독자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하는 동반성장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설립,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동반성장포럼은 7일 100회를 맞았는데, 지금까지 112개의 관련 연구 발표가 있었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연구소를 이끌어오며 기억할만한 성과도 많았지만 아쉬웠던 점도 많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가장 아쉬운 점으로는 대기업의 이익 공유에 대해 아직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는 점을 꼽았다.

정 이사장은 “그동안 대기업의 이익이 지나치게 많았던 것은 그들이 잘한 것도 있지만, 기술 탈취, 납품가 후려치기 등 중소기업에게 가야 할 돈이 대기업에게 가는 것도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이사장은 “10년 전 동반성장연구소를 처음 시작하면서 대기업의 이런 횡포를 막고 중소기업을 위한 이익 공유의 필요성을 설파했지만, 당시 대기업들로부터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시혜를 베풀라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고 언론으로부터 큰 호응도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4일 서울 관악구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다음 달 4일부터 시행되는 납품대금연동제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시작하는 것에 의미가 있지만, 여러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정 이사장의 생각이다.

납품대금연동제는 납품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원재료가 있는 수ㆍ위탁거래의 경우 연동약정을 체결해 조정요건 및 산식에 맞춰 납품대금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연동약정은 원재료 가격 변동률이 10% 범위에서 당사자 간 협의로 결정토록 했다.

하지만 수ㆍ위탁거래 기간이 90일 이내이거나 납품대금이 1억 원 이하인 계약은 예외로 하면서 쉽게 무력화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 이사장 역시 “대기업의 횡포를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는 제도가 생긴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개선 방안을 계속해서 마련하는 절차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연구개발(R&D)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다른 방식의 연구개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대기업은 핵심 첨단 기술, 원천기술 분야의 연구에 투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R&D에서 D(제품화까지 진행하는 개발업무)만 열심히 하고 R(기초연구)은 등한시한다”고 말했다. 이어 R 역시 실질적인 원천기술 연구보다는 기존 기술을 개조하는 리파인먼트(refinement) 비중이 높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의 세부적인 조건 없는 법인세 인하 기조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표했다.

정 이사장은 “이번 정부 들어서 법인세 인하로 인한 투자가 늘었다는 지표는 아직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과거 정부들이 세금을 인하했을 때도 딱히 투자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자료는 별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인세 인하에 원천투자를 연결시키는 방법도 제시됐다. 정 이사장은 “무작정 ‘경제가 어려우니 법인세를 깎아주자’는 식의 정책보다는 실질적 원천기술에 투자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법인세를 깎아주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R&D 투자 증가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정 이사장은 세계적 추세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동반성장의 가치가 연관된 부분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며 동반성장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정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ESG와 동반성장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ESG가 추구하는 가치가 동반성장이고, 동반성장은 ESG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며 “E와 S에 대한 인식은 경제적 이윤을 뛰어넘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대기업만의 이윤이 아닌 모든 기업이 함께 가자는 의미를 담은 동반성장과 궤를 함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ESG에서 말하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동반가치를 경제활동의 목적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며, 이윤 극대화보다는 동반후생 극대화를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기업에서 나타나는 ESG 워싱(ESG 달성을 위한 실제 활동이나 개선 없이 노력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 현상에 대해선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 이사장은 “ESG 추구가 절박하다고 해서 하는 척하는 식으로 과도하게 서두르기보다는 ESG 실천을 위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4일 서울 관악구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연구소 외에도 지난해부터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으로도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및 총장, 국무총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의 여러 현안을 경험했지만, 인구문제만큼은 쉽사리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라고 평가했다.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방법 중에서도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 강화를 가장 먼저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한국의 비혼 출산 비중은 3%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022년 기준 63.8%에 이르는 프랑스는 물론 2021년 기준 평균 42%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사회적 인식은 물론 제도적으로 결혼 후 낳는 아이와 동일한 혜택을 주지 않는 것도 원인으로 봤다.

그 외에도 정 이사장은 “인구문제 해결을 위해 이민 정책을 좀 더 개방적으로 바꾸는 것, 출산 시 현금 지원이나 각종 지원책을 현재보다 통 크게 넓히는 것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구문제 해결, 동반성장을 위해 정치적 행보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 이사장은 정치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 이사장은 “정치에 영향을 준 적도 있고 받은 적도 있지만, 정치인이라고 하면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에 나왔던 경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그런 적은 없기 때문에 정치인이었던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정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고, 앞으로도 정치에 관여할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향후 동반성장연구소의 계획에 대해 정 이사장은 “재정적 여유를 확보해 연구소의 자체 연구 인력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이익 공유라든지 이러한 것들에 관한 타당성 연구가 더 활발해지면, 더 많은 연구 근거를 기준으로 동반성장 활동을 지금보다 더 활발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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