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국 비료업체에 요소 수출 중단을 지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중국 대형 비료 제조업체 일부가 이달 초부터 신규 수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중국 당국이 수출 제한에 나서는 건 자국 내 요소 가격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정저우 상품거래소에서 요소 선물 가격은 6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7주 동안 50% 가까이 폭등한 바 있습니다. 이후 요소 선물 가격은 등락을 거듭해 이번 주에는 약 11% 하락했죠.
현지 선물거래 전문가들은 중국 내 재고가 감소하고 수출이 늘어난 까닭에 가격이 상승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수출을 제한해 자국 내 공급을 보다 원활하게 한다는 겁니다.
수출 제한은 지금까지 비료 원료 중 하나인 요소에만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문제는 중국이 세계 최대의 요소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라는 겁니다. 중국이 요소 수출을 제한하면 공급이 부족해져 글로벌 비료 가격이 급등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차량용 요소수로 쓰이는 요소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크죠. 요소수는 요소를 물에 녹여 만듭니다.
우리 정부가 주중 대사관 등 외교당국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비료용 요소의 수출 통제 조처에 나선 건 아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수출 제한은 산업계에 적잖은 타격을 줄 수 있기에 우려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통신은 인도, 한국 등 국가를 언급하며 요소와 요소수 등 관련 상품의 부족 현상이나 가격 상승을 겪게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더군다나 한국은 중국의 요소 수출 중단 여파로 곤욕을 치른 바 있기에,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2021년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 조치로 인한 ‘요소수 대란’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당시 중국은 비료 수급난이 발생하자 자국 요소 수출 검사를 의무화하는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했는데요. 이에 따라 한국 등에선 매연 저감 장치가 달린 디젤 차량에 필요한 요소수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가격이 급등하고 품귀 현상이 나타나 물류가 마비되는 위기까지 맞았습니다.
평소 10ℓ당 1만 원 수준이었던 요소수 가격은 당시 10배 가까이 치솟기도 했습니다.
산업계가 타격을 받자,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경제 안보와 밀접한 핵심 품목 공급망 관리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내 업체들과 손을 잡고 요소수 수입처 다변화도 추진했죠.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나라로 다양하게 변화를 주겠다는 취지였는데요. 그 결과 요소 수입 가운데 중국산 비중은 2021년 71.2%에서 지난해 66.5%로 떨어졌습니다. 빈자리는 베트남, 카타르(각 8.8%), 인도네시아(7.3%) 등이 메꿨죠.
그런데 올 상반기 베트남, 인도네시아산 요소 수입 비중은 0%로 떨어졌고, 중국산 요소가 89.3%로 상승했습니다. 다시 중국산 요소가 수입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겁니다.
중국산 요소는 가격 경쟁력이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내 업체들도 다시 중국산을 선호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되는데요.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7월까지 중국산 요소를 19만6000톤(t) 수입해 인도(22만6000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수입한 국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다만 앞서 요소수 대란을 경험한 만큼, 한국 요소 수입 업체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축량을 늘려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요소수 비축 물량이 차량용 기준 두 달 치 확보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국이 전면적인 수출 통제에 나서더라도 곧장 심각한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진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또 정부는 앞서 파악한 목록을 바탕으로 대체 수입선을 확보하는 중이라는 설명입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수출 통제가 사실상 한국을 향한 우회적 경고가 아니냐는 의견도 내놓고 있습니다. 중국이 그간 다른 나라와의 갈등에 ‘자원 무기화’로 대응해 온 사례가 있기 때문이죠.
반도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에 대한 제재를 단계적으로 강화하자, 중국은 갈륨·게르마늄 등 수출 제한 카드를 뽑아 들었습니다.
갈륨은 차세대 전력 반도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마이크로LED(발광다이오드) 등에 사용됩니다. 게르마늄은 반도체 공정용 가스 소재로 활용되죠. 갈륨과 게르마늄 시장에서 중국은 각각 94%, 83%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2018~2021년 사이 갈륨 수입량 중 53%도 중국에서 온 건데요. 게르마늄의 중국 의존도도 54%입니다.
이들 품목은 아직 시장 비율이 작은 차세대 반도체 원료이기 때문에 당장 큰 충격은 없으나,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중국은 희토류 15종을 포함한 핵심 원자재 51종 중 33종에 대해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 핵심 원자재 가운데 64.7%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데요. 세계 코발트 채굴량에 대해선 41%, 리튬은 28%의 비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흑연 채굴량은 78%에 달하는데요. 흑연은 전기차 배터리 핵심 요소인 음극재를 만드는 핵심 물질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중국은 세계 광물 공급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어 이번 요소 수출 통제 조치 관련 보도도 산업계의 긴장감을 높였습니다.
한국은 자원 대부분을 수입해서 쓰는 나라입니다.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은 97%, 반도체 배터리 등 주력 산업에 핵심 원료로 사용되는 10대 광물은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죠.
앞서 경험한 요소수 대란 당시 특정 품목의 수입이 끊기면 산업계뿐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이 마비되고, 국가안보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바 있는데요. 여기에 높은 중국산 의존도는 요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됩니다.
이에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줄곧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이 수출 통제 대상을 늘릴 때마다 세계 공급망도 타격을 받는 만큼,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가 비료용 요소 수출을 제한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과거와 같은 포괄적인 수출 제한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상황입니다. 강종석 기획재정부 경제안보공급망기획단 부단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현재 외교당국 중심으로 접촉해봤는데 중국 정부는 공식적 비료용 요소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강 부단장은 “9월 2일에 중국 화학비료업체가 중국 내 공급물량 보장을 위해 비료용 요소 수출물량 축소하겠다는 방침 발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우선적으로 비료용 요소 확보현황을 살펴보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다만 향후 중국이 국내 물량 안정화 등을 이유로 실제 수출 통제 조치를 하더라도, 국내 비료용 요소 수급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강 부단장은 “비료용 요소는 수입 다변화가 이뤄지고 가격도 안정화하는 추세”라며 “향후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현재 정부 내에서는 중국이 요소 수출을 전면 통제한 2021년 때와 현 상황이 기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는 기류가 강한데요. 이번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 조치가 다시 현실화할 경우를 대비해 국내 요소 관련 업계와 중국 내 동향 및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