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22세기 쯤은 되어야 제대로 판가름 나겠지만, 지나간 세월과 국제정세를 두루 살펴보니 일단 윤석열 정부의 결정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게 된다.
우선 한반도는 오랑캐와 가까이 지내서 덕 본 적이 별로 없어 보인다. 역사에도 취향이 허용된다면 조선을 비호감으로 택하고 싶은데, 포괄적인 이유는 일단 헬조선이라는 멸칭으로 갈음해두자. 틈만 나면 요동을 넘어 중원으로 가는 길을 째려보던 동북아의 호랑이가 헬조선으로 쪼그라든 근원적 배경에 친중 사대주의가 있어 보인다.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의 건국 과정은 태조가 요동정벌을 포기하면서 시작됐고, 이는 그의 손자 세종대왕이 오랑캐를 지나치게 떠받드는 사대정책을 펼치다 신하들과 충돌하는 장면으로까지 이어졌다.
자발적 오랑캐가 견뎌야했던 수모는 송시열이라는 걸출한 성리학자(라 쓰고 사대주의자라고 읽는다) 덕분에 병자호란을 겪는 흑역사에서 절정에 달했다. 한족을 아버지로 삼고 스스로 동쪽 오랑캐임을 자처했던 조선은 오랑캐중에서도 하급 오랑캐 취급하던 여진족에게 무릎 꿇고 머리를 짓찧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한국전쟁 당시 다된 통일에 재 뿌린 인해전술의 주인공도 모르는 이가 드물테니 헬조선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알아보자.
왜구는 늘 골칫거리였다. 한편으론 쥐어 박고, 한편으론 달래도 ‘저게 바다에 뜬단 말인가’ 싶은 판때기를 타고 몰려와 노략질을 일삼는 귀찮은 존재. 우습게 봤던 그들이 어느새 훌쩍 커서 한반도를 통째로 집어삼켰으니 그 모멸감이야 말해 뭐하나. 요즘은 바다에 이상한 물질까지 뿌려대니 밉상도 이런 밉상이 없다.
길을 막고 오랑캐와 왜구 중에 누가 더 나쁜 놈인지 묻는다면 왜구라는 답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는 짓을 보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교에서 그게 중요할까. 긴 시간동안 중국은 한반도에 선진문물이 유입되는 통로였다. 화약이나 나침반처럼 아예 중국에서 탄생한 신기한 물건도 많았다. 은나라부터 중화인민공화국까지 1만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강대국이 아닌 적도 없었다. 하지만 중국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서 한반도가 부강했던 시절은 드물어 보인다. 오히려 강성대국은 오랑캐와의 사생결단 후 찾아온 경우가 많다.
고구려가 동북아 패권국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천하통일을 꿈꾸던 위나라 등짝에 강스매싱을 날렸다가 역습 당한 뒤였다. 신라는 약속을 어긴 당태종에 맞서 만주를 기습한 뒤에야 통일시대를 열었다. 청자로 대표되는 고려의 찬란했던 전성기도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럼 대한민국도 중국이랑 맞장 한 판 뜨자는 말인가. 죽은 자들의 선택에서 배울 시기라는 뜻일 뿐이다. 반도 남쪽 끝자락에 고립된 탓인지 대한민국은 국제정세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최근 한반도 주변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필자같은 쫄보는 이러다 한반도에서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될까 겁이 날 지경이다. 현 정부의 거친 언행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한일중 협력도 중시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이유다.
국제뉴스는 녹색창 검색을 통해 살펴보시면 될 테고, 뉴스에 잘 나오지 않는 경제상황을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2.0%P라는 역대급 한미 금리차에도 우리 금융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이탈이 이어진다는 소식은 보이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웃나라가 왜구여서다. 일본의 올해 실질 GDP 성장률은 4.8%로 예상된다(며칠 전까지만해도 무려 6.0%였다!!!). 그런데 기준금리는 0.5%에 불과하다. 금리는 바닥인데 (상대적으로)잘 돌아가는 경제 덕에 넘쳐나는 돈은 현해탄을 건너 우리나라에 대거 들어와 있다. 미국과의 금리차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기로 벌어졌는데도 국내 금융시장이 버티는 이유 중 하나다.
토착왜구 소리까지 들으며 일본과 화해한 이유가 이것만이 아니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안다. 다만, 번영을 이어갈지 석기 시대로 돌아갈지 갈리는 선택에서 유아적 자존심에 내줄 자리 따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