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경제학] 중국 경제 최대 위기는 부동산 아닌 국민 불안·좌절

입력 2023-09-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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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확실성에 심리 위축→소비 감소→고용 악화 악순환
저축, 사상 최대 수준이나 불안에 소비자 지갑 닫아
‘GDP 77% 차지’ 소비 불안이 전체 경제 둔화로 이어져
7월 청년실업률 돌연 발표 중단
“정부도 자신감 결여 증거” 지적

▲중국 베이징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베이징/AP연합뉴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불안과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불안과 공포심리는 경기 회복세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의 요인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이다. 최근 중국은 부동산 침체와 개발업체들의 채무불이행(디폴트)과 파산 등으로 글로벌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진정한 위기는 부동산이 아니라 중국인의 ‘불안한 심리’에 있다는 분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최근 각종 지표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7월 중국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시장 전망치(4.5%)를 크게 밑도는 것이다.

수중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제로 코로나’ 등 엄격한 방역 정책의 영향으로 가계저축이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해 17조8400억 위안(약 3238조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즉 현재 소비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소비지출은 국내총생산(GDP) 기여율이 올해 상반기 77.2%에 달할 정도로 국가 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소비 위축은 기업 생산 축소와 고용감소로 이어졌다. 고용·평균 소득 등의 선행 지표로 활용되는 산업생산도 7월에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시장 전망치(4.4%)를 밑돌았다. 청년(16~24세) 실업률은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 폐지 이후 ‘보복소비’와 같은 소비 급증을 기대했던 기업들은 중국 내수 위축에 성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와 JD닷컴(징둥닷컴) 등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저가 상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시장에선 이들 기업의 수익성 저하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우려를 의식한 듯 알리바바의 대표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와 JD닷컴은 올해 상반기 최대 온라인 쇼핑 행사인 ‘618 쇼핑 페스티벌’ 매출과 거래량을 공개하지 않았다. 글로벌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는 중국 내수 부진 영향으로 최근 사상 최장 기간 주가 하락세를 기록했다.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 정부는 지난달 말 노후차량 보상 판매를 장려하고 신용카드 한도를 상향하는 등 소비 진작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폭락과 사상 최고치에 달한 청년실업률 등으로 소비자 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버트 호프먼 전 세계은행(WB) 동아시아·태평양 경제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기대 경기침체(Expectations Recession)’를 겪고 있다”면서 “모두가 앞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결국 자기실현(self-fulfilling)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비자는 물론 중국 정부조차도 경제 회복에 자신감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15일 갑작스럽게 청년 실업률 공표를 중단했다. 지난 6월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신규 대졸자들이 취업 시장에 대거 유입된 7월 청년 실업률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중국 당국이 경제 지표에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경기침체 위기 속에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민감한 지표의 불투명성이 커지면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심리를 더 자극하고 있다”면서 “이는 또한 중국의 진짜 문제가 단순히 경제를 넘어 심리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에 중국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경제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민간 심리 개선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온라인 매체 싱크차이나는 “소비 잠재력을 회복하려면 고용과 소득을 늘리기 위한 더 많은 조처를 해야 하고, 사람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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