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구글, 테슬라,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등을 중심으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RSU 도입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벤처·스타트업계에 기대감이 커진다. 업계는 RSU가 활성화되려면 벤처기업 실정에 맞게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11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RSU는 성과 달성 등을 조건으로 양도제한이 해제되는 주식 보상 제도로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하고 있다. 기업가치가 급성장하거나 주식 강세장이 아니면 효과가 반감되는 스톡옵션과 달리 RSU는 주식 약세장에서도 효과가 크고, 자사주를 활용해 기존 주주들과의 반발도 크지 않을 수 있다.
한화그룹은 2020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각 계열사 대표이사, 대표이사 후보군에 속하는 임원 등을 대상으로 RSU를 도입했다. 두산그룹을 비롯해 네이버, 포스코퓨처엠, CJ ENM 등도 RSU를 도입해 실행 중이다.
반면 벤처기업 대부분은 RSU 도입을 꿈도 못 꾸고 있다. RSU는 ‘자기주식의 처분’에 대해 규정한 상법 제342조에 근거해 부여하게 되는데, 벤처기업은 같은 법 341조 ‘자기주식의 취득’에서 허들을 마주하게 된다. 해당 조 제1항은 회사가 배당 가능한 이익에 한해 자기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대부분 벤처·스타트업들은 지금 당장 이익을 내지 않지만, 미래 성장 가능성을 바탕으로 투자를 받아 적자를 감수하면서 몸집을 불려가는 과정을 거친다. 초기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꼽히는 핵심 인력을 확보하고, 사기를 끌어 올리는 데 RSU가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꺼내 들지 못했던 이유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RSU에 대해서 들어봤고 실제로 도입할 수 있는지 살펴봤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향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내 벤처기업만 RSU를 도입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 대책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벤처기업의 지속 성장을 뒷받침하는 지원제도를 보완하겠다며 인재 유인책 다양화 방안으로 RSU 제도 도입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해 자본잠식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과조건부 주식 부여를 위한 자기주식 취득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관련 법 개정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면 내년께 본격적인 도입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벤처기업들이 요구해온 특례법 적용과 세제 혜택 중 절반이 이뤄진 셈이다.
RSU 도입이 실질적으로 이뤄질지는 관련 제도가 구체화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현재는 직접적인 규정이 없어 상법에 따라 간접 규제를 받으면서 RSU는 이사회 결의만 있으면 부여할 수 있고, 부여 대상과 기간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장점이 있다. 특례법이 만들어지면 이사회 결의, 부여 대상, 기간 등 관련 제한이 생길 수 있다.
행사이익 비과세 특례, 행사이익 납부 특례, 행사이익 과세특례 등 스톡옵션과 유사한 세제 혜택 부여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일각에서는 자본잠식이 발생하더라도 자기주식 취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은 최근 “스타트업이나 빨리 성장하는 회사들은 적자가 나도 계속 펀딩하고 키워나가는 데, 그러면 RSU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소프트웨어개발 등 서비스업종의 매출액 5억 원 미만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대상 벤처기업 3만7686곳 중 7.87% 수준인 2966곳이 대체로 완화된 기준으로도 당장 RSU를 부여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업계는 제도의 연착륙 등을 고려하면 대상 확대 방안 등은 향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제도 도입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성하고 법을 정비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용어정리>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Restricted Stock Units)은 성과 달성, 근속 기간 등 조건을 충족하면 기업이 무상으로 자기주식을 지급하는 성과보상제도다. 주가 변동과 관계없이 확정적인 이익을 보장해 주식 약세장에서도 효과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기 또는 안정적 성장단계 기업에 활용도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