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금융업 진출, 지분제한에 발목
신수익원 발굴도 답보상태 빠져
“그동안 ‘이자 장사’에만 매몰돼 있다는 지적 때문에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해도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규제 때문에 시도하기가 쉽지 않아요. 금융당국의 금산분리 완화 발표를 1년째 기다리고 있지만 제자리인 부분이 답답합니다.”(A 시중은행 관계자)
은행권이 차일 피일 미뤄지고 있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사업 진출을 검토하려고 해도 금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다. 혁신금융서비스를 이용해 신시장에 진출하려고 해도 사업이 통과되는데 걸리는 시간 소요와 일정 기간(최대 4년)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한계 때문에 신 수익원 발굴은 답보 상태에 빠졌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7월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금산분리 및 업무 위·수탁 규제 정비안을 3분기 중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소상공인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의견수렴을 거쳐 입장을 정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실상 3분기 중 금산분리 규제 완화안을 발표하는 것은 어려워진 셈이다.
금산분리란 금융자본인 은행과 산업자본인 기업 간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원칙을 말한다. 금산분리 규제 때문에 은행은 비금융산업에 진출하려 해도 다른 회사의 지분에 15%까지만 출자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사실상 은행권이 대부분 수익을 ‘이자 이익’에 기댈 수밖에 없는 원인도 금산분리 규제에 있는 셈이다.
은행권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취임 직후 부터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언급하면서 내심 벽이 허물어질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당시 김 위원장은 “우리 금융산업에서도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연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하지만 취임 후 1년이 넘도록 금산분리 규제 완화 소식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놓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정책 개선 여부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정작 정부가 지속해서 은행권에 이자 장사를 탓하며 압박하는 것과 대비된다. 올해 2월 윤석열 대통령은 ‘이자 장사’로 성과급 잔치를 벌인 은행권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은행권은 비이자이익을 높이려 애를 쓰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은행권이 비이자이익을 늘리는 데는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신사업 진출이나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박창옥 은행연합회 상무이사는 “국내 은행의 이자 수익이 85%, 비이자 수익이 15% 수준인데, 비이자 이익을 늘리려면 비금융사업에 진출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서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당국에서 더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읍소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산분리 규제를 풀어주지 않으면서 ‘이자 장사’에만 매몰되지 말라고 비난하는 것은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닌가 싶다”며 “은행권에서도 자체적으로 상생금융을 앞세우고 비금융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데 정책적인 지원이 없다는 게 답답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