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을 13일째 이어가고 있는 12일까지도 정부‧여당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양측의 관계가 악화일로인 가운데서도 극단적 투쟁을 멈추고, ‘정치하자’는 화합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 관례였던 만큼 역대 야당 대표의 단식사(史)에 비춰볼 때도 낯선 모습이다.
정부‧여당에서는 이 대표를 만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표 단식을 사법리스크 방어용, ‘방탄 단식’으로 규정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양향자 한국의희망 공동대표가 “여당이 나서야 할 때다. 당장 이 대표를 만나주길 바란다”고 촉구하자 “비공개 만남 제안에 아직 답변이 없다. (또) 단식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있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도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 수사에 앞서 단식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민주투사 코스프레로 사법시스템을 모욕주는 것이 이 대표가 약속한 당당한 태도인가”라며 “수사 방해용 단식”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덕수 총리는 8일 대정부질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 만남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비정하다”는 분위기다. 김영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은 이날 YTN라디오에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이 대표를 찾아와 이번 정부에서는 그런 게(만남 시도) 일절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참으로 비정한 정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역대 야당 대표의 단식 중에는 정부‧여당에서 단식 중단을 촉구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가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2019년 11월 20일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 투쟁이 있다. 황 대표는 등을 이유로 단식 투쟁에 돌입했고,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낙연 국무총리, 강 수석 등이 황 대표를 찾아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2018년 5월 3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댓글 사건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에 나섰을 때도 우원식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와 단식 기간 중 새로 취임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김 원내대표를 찾아가 건강을 걱정하고, 단식 투쟁을 멈추시라고 촉구했다.
1990년 10월 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각제 저지와 지방자치제 실시를 위해 단식에 돌입했고, 당시 거대 여당 대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를 찾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단식 8일차에 병원에 입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기도 했고, 여야 합의로 요구사항이 타결되는 성과도 있었다.
1983년 5월 18일 가택연금 중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언론통제 해제,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주장하며 단식에 들어갔을 때도 당시 전두환 정권이 회유 차원이긴 했지만 단식 중단을 위한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지금과 같은 정부‧여당의 무반응에 대한 민주당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정부의 국정 쇄신을 요구하며 시작한 단식인 만큼 출구 전략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까지 이 대표 측은 단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김 정무조정실장은 “대통령 사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내각 개편 요구 등을 했지만, 변화가 없다. 그러니 출구전략을 논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검찰 수사 규탄과 함께 단식 중단을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특히 이종섭 국방부 장관 탄핵으로 모멘텀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이 장관이 이날 직접 사의를 표명하며 흐지부지됐다.
한편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쌍방울 그룹 대북 송금 의혹 조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검으로 재출석해 1시가 50여분 간 조사를 받았다. 2주 가까이 이어진 단식에 이 대표의 기력이 매우 떨어진 상황이다. 9일 검찰 소환조사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8시간 만에 조사를 마친 그는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도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