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그제 발표한 선거관리위원회 채용비리 적발 결과는 볼수록 가관이다. 선관위가 7년간 자체 진행한 162회 경력채용 중 104회(64%)에서 353건에 달하는 채용 비리가 있었다고 한다. 같은 기간 경력채용자 384명 중 15%에 해당하는 58명이 부정 채용된 의혹이 짙다. 권익위는 상습적으로 부실 채용을 상습 진행한 혐의가 있거나 고의성이 의심되는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 등 규명이 필요한 312건을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부정채용 수법은 자못 다양했다. 국가공무원법상 5급 이하 임기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경력채용 절차를 별도로 거쳐야 함에도 1년 임기제 공무원 채용 후 서류·면접시험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만 채용공고를 게재했고, 나이 등 자격요건에 미달한 응시자를 합격시키거나 요건을 충족한 응시자를 탈락시켰다. 선관위 근무자에게만 가점을 부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합격자 결정 기준을 바꾸거나 채용 공고와 다르게 예비합격자를 추가로 채용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자기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식의 채용 잔치를 벌인 것이나 진배없다.
국가공무원법과 선관위 자체 인사규정에 따른 절차를 위반해 적발된 건수도 299건에 달했다. 관련 분야 실무경력 1년 이상을 선관위 실무경력 1년 이상으로 해 응시자격 기준을 규정보다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채용공고 기간을 10일에서 4일로 단축하는 등의 수법도 동원됐다.
권익위는 선관위의 자료 제출 거부로 비공무원 채용 전반과 공무원 경력채용 합격자와 채용관련자 간 가족관계나 이해관계 여부 등은 점검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른바 ‘아빠 찬스’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그런 민감한 부분에 대한 규명 작업은 선관위 비협조 때문에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이 선관위로부터 받아 최근 공개한 자료에서도 자녀 및 사촌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된 신우용 전 제주도선관위 상임위원과 전남 무안군선관위 7급 공무원 A 씨는 7월 1일 의원면직 처리된 것으로 드러났다. 의원면직이 되면 공무원 연금 삭감은 물론 재임용 제재조차 받지 않게 된다. 선관위는 국민 공분이 번지는 상황에서도 진상 규명에 협조하기보다 거꾸로 제 식구를 감싸면서 구린 구석을 덮는 데 주력한 인상이 짙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란 이유를 들어 장기간 외부 감시를 거부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으면 그 어떤 기관이든 썩고 곪게 마련이다. ‘조직범죄’ 색채마저 없지 않은 비리 규모가 이를 방증한다. 이런 비리는 양질의 일자리에 목마른 젊은 세대를 더더욱 좌절하게 하는 악질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다. 이런 조직이 어찌 ‘공정’을 입에 담고 투명한 선거관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혹 규명과 문책·처벌은 당연히 할 일이지만, 나아가 외부 감시를 상설화하고 해체수준의 조직 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선관위만 이런지도 의문이다. 차제에 헌법기관 등의 방패를 앞세우는 유력기관 전반에 걸쳐 유사 사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적어도 채용비리는 뿌리뽑아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