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활동의 효율성을 중시하던 보편적 세계화의 시대에서 경제 및 에너지 안보의 중요도가 커지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경제 정책에 지정학적 요인을 고려함에 따라 국가들이 공급망을 자국으로 회귀시키거나 동맹국으로 이전시키는 경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는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게 하며, 과거에 비해 높은 물가와 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물가가 높게 형성된다면, 또는 동맹국들이 광물이나 원자재 가격을 담합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수시로 자극한다면, 섣불리 통화정책을 완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통화정책이 성장보다 인플레이션 대응에 맞춰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거시 안정책의 주도적인 역할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옮겨간다는 점은 소비 주도의 성장 모델에서 투자 주도의 모델로 변화한다는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는 신흥 개도국이 생산을 맡고,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공급하면, 미국 등 선진국은 소비를 늘려 성장했다. 미국은 제조업 생산이 주로 해외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고용 소득을 통한 소비 여력 개선이 제한적이었고, 자산 소득과 대출에 의존해 소비 여력을 늘렸다. 하지만 물가의 하향 안정화라는 전제가 훼손되고 있다. 이는 통화정책의 경기 부양 효과를 제한하는 동시에 높은 금리 탓에 대출과 소비를 제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 주도의 투자가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리쇼어링과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이 상징적인 조치이다. 정부가 만들어준 투자 환경에서 민간 기업 투자가 얼마나 파생되는지에 따라 미국의 중장기 성장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 정부도 부채 부담과 정부지출에 의한 인플레이션 부담을 고려하면 적극적인 재정지출은 어렵다. 이에 따라 선별적인 재정지출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 부양 효과가 큰 투자성 항목을 늘리는 한편, 부유층이나 고소득층의 소득세율 인상 등을 통해 재정을 보완하려 할 것이다.
자국우선주의에 기반한 선진국의 리쇼어링, 동맹을 통한 무역 형태, 이로 인한 투자 주도의 경제 환경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까? 미국이 민간 투자를 늘리고,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 관련한 중간재 수출이 늘어난다는 점이 우호적일 것이다. 한국의 가공단계별 수출을 보면, 중간재가 74%로 가장 높다.
이와 함께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과 탈중국화에 따른 대안으로 ‘알타시아(Altasia)’라는 아시아 14개국의 역할이 제시되고 있다. 알타시아는 ‘대안적인(Alternative)’과 ‘아시아(Asia)’의 합성어이다.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아시아 공급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 수준을 갖춘 국가, 인구가 많은 국가, 아세안 국가 등이 포함돼 있다. 물론 한국도 속한다. 한국에 외국인직접투자 자금이 유입될 것이고, 기술집약적 산업에 집중될 것이다. 한국 내 산업간 차별화가 심화될 수 있다.
주식시장 측면에서 보면, 우선 리쇼어링을 중심으로 한 미국 정책 패러다임 전환에서 수혜를 입게 되는 반도체 등 중간재 성격의 IT 업종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임금 상승 및 공급망 불안정 등에 따른 중물가 기조가 만들어내는 중금리 시대에는 기계, 자동차 등 수익성과 재정 안정성이 우수한 업종도 차별적인 성과를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