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단식 2회전에서는 세계 랭킹 112위 권순우와 태국의 카시디트 삼레즈(22·세계 랭킹 636위)가 맞붙었는데요. 이날 1세트를 허무하게 내준 권순우는 2세트에서 가까스로 역전에 성공했지만, 3세트 시작 후 연달아 실점하며 경기를 내줬습니다. 세트스코어 1-2(3-6, 7-5, 4-6)로 패하고 말았죠.
권순우는 2월 어깨를 다친 뒤 지난달 복귀했지만, 올 시즌 부진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어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그는 복귀 후 이날까지 6전 전패를 기록했는데요. 문제는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경기 후 코트에 라켓을 수차례 내리치는 권순우의 모습이 포착된 건데요. 그는 라켓이 찌그러지고 부서진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다시 라켓을 집어 들고 바닥을 내리쳤습니다.
삼레즈가 인사하기 위해 다가왔지만, 권순우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짐을 정리했습니다. 삼레즈는 무안한 듯 뒤돌아서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죠.
해당 장면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해외에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요. 특히 중국 매체 시나닷컴은 권순우의 행동을 한국 남자 선수들의 병역 혜택과 연관 짓기도 했습니다. 매체는 “한국 선수들은 올림픽 메달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다”며 “많은 한국 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큰 압박을 받고 있으며, 패하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의중은 당사자인 권순우만 알겠지만, 아시안게임으로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 많은 남성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쥐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운동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병역의무특례규제에 관한 법이 만들어진 건 1973년입니다. 처음엔 올림픽, 아시안게임뿐 아니라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 3위 이상 입상도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게 그만큼 어려웠던 건 방증하는 셈이죠.
이 법은 개정을 거쳐 지금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이상 입상자만 체육 분야 병역 특례 대상자로 봅니다.
엄밀히 말해서 ‘군 면제’는 아닌데요. 2015년부터 적용 중인 병역법에 따르면 병역 혜택을 받는 사람은 3주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34개월 이내에 544시간 봉사활동도 해야 합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 혜택을 받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30·토트넘)도 지난해 544시간의 봉사활동을 완료했습니다. 기초군사훈련에 이어 봉사활동 등 병역 관련 절차를 모두 마무리한 손흥민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소속팀과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고 있죠.
남성 선수들에게 병역 특례는 매우 중요한 혜택입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어린 선수들은 경력 단절 걱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 해외에서 안정적인 프로 생활을 보내거나 적극적으로 유럽 진출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이강인(22)의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PSG) 역시 이 혜택에 주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프랑스 매체 ‘컬처 PSG’는 19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경기를 끝으로 이강인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선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한다”고 알리며 한국의 병역 혜택을 조명했는데요. 매체는 “만약 한국과 이강인이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다면 이강인은 약 18개월의 병역을 면제받는 혜택을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프랑스 프로축구 정규시즌과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PSG가 최근 허벅지 부상까지 입은 이강인의 아시안게임 출전을 허락한 덴 다 이유가 있다는 건데요. 병역 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은 이강인에게도, PSG에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올해 아시안게임에서는 e스포츠가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e스포츠는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는데요. 개최국인 중국 현지에서 e스포츠가 큰 사랑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e스포츠의 종주국’인 한국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린 겁니다. 한국 팀은 시범 경기로 채택됐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에 밀려 은메달을 따낸 바 있습니다.
22일 한국 e스포츠 대표팀이 중국 항저우 샤오산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자, 세계적인 e스포츠 선수 ‘페이커’ 이상혁을 비롯한 선수단을 보기 위한 팬들로 공항은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웨이보엔 이상혁과 함께 찍은 사진이 다수 게재돼 인기를 실감하게 했죠.
AFP통신은 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두고 이상혁을 주목할 선수로 꼽기도 했는데요. 통신은 그에 대해 “e스포츠의 전설적인 존재”라며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역대 최고 선수로 평가된다”고 전했습니다.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서 첫선을 보이는 e스포츠는 병역 특례와 함께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AFP통신은 22일 ‘한국 게이머에 대한 병역 면제 논란 재점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팀의 주장이자 토트넘 공격수인 손흥민은 2018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군 복무를 피했다”며 “하지만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전 세계에 K팝을 홍보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그렇지 못했다. BTS의 두 멤버는 현재 군 복무 중이고, 슈가는 곧 입대 예정”이라고 설명했죠.
BTS 측이 직접 입대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 이들의 병역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2020년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로 입대 시기를 만 30세까지 연기한 멤버 진이 병역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올해 안에 입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죠. 당시 국민 여론은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BTS가 대중문화예술인으로서 국위선양하고 있는 만큼 대체 복무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형평성과 공정성 등에 대한 반론도 이어졌죠.
통신은 손흥민과 BTS의 사례를 언급하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의 LOL팀이 금메달을 따고 병역 특례를 받게 되면 (형평성에 대한) 논쟁이 다시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