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건재 감독 "젊은이들 왜 한국사회 힘들어하는지 주목해야"
20대 후반에 들어선 계나(고아성)는 한국 생활을 접고 뉴질랜드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유는 복잡하지만, 정리하자면 간단하다. ‘한국이 싫어서’.
4일 오후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기자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장건재 감독의 신작 ‘한국이 싫어서’ 이야기다.
장 감독은 이날 상영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주인공 계나는 직장이 있고 말이 제법 잘 통하는 오랜 파트너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삶의 환경을 바꾸려 한다”면서 “무엇이 그녀를 계속해서 한국이라는 사회를 탈출하게끔 만드는지, 젊은이들이 왜 한국 사회를 힘들어하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연출 배경을 전했다.
‘한국이 싫어서’는 2015년 출간된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극심한 경쟁 체계와 가부장적인 문화 등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들춰내며 주목받았다.
출간 이후 소설을 곧장 접했다는 장 감독은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2014년, 2015년의 한국 사회는 여러 일을 겪었다”면서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을 거치며 우리 사회가 크게 변화하던 시점 한가운데 이 소설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또 “1인칭 여성주인공 목소리로 당대 한국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고 거침없이 이야기기하는 소설이었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한국사회에 느끼는 불만이 있었기에 그 목소리를 영화로 옮겨보고 싶었다”고 연출 동기를 전했다.
영화 속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서울에서 4년제를 졸업한 뒤 남 보기에 번듯한 금융회사에 취직해 한국 사회가 원하는 표본처럼 성실히 살아가던 20대 주인공으로 묘사된다.
그의 삶은 녹록지 않다. 인천에서 강남으로 편도 2시간의 대중교통 출근길을 버티며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지만, 부모님의 주거비로 또다시 수천만 원을 분담해야 한다.
같은 대학을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남자친구 지명(김우겸)은 결혼을 원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그의 집 가족이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마음이 거북스럽다.
한국 사회에 태어난 청년 누가 겪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일상적인 부담’이지만, 계나는 모두가 당연한 듯 같은 종류의 부담을 지고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요구받는 사회의 분위기를 못내 견디기 어려워하는 인물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자리한 남동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프로그래머로서)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얼마나 정직하게 우리 삶을 반영하는가”라면서 “’한국이 싫어서’에는 미래에 대한 큰 불안감을 지닌 젊은 친구들이 나오고 그들이 처한 현실의 문제를 다양하게 드러낸다”고 의미를 짚었다.
또 “케이팝, 케이무비 등 한국 콘텐츠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뜨거운 시대 살고 있는 요즘 한국에 대한 판타지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한국에 사는 사람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도 갖고 있다는 걸 알면 한국에 대한 밝은 면과 어두운 면까지 좀 더 잘 알게 될 것”이라고 개막작 선정 이유를 들었다.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를 시작으로 문을 여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3일까지 10일간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CGV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대영 등 4개 극장에서 269편의 영화를 상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