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검토보고서 "자유로운 표현 위축될 가능성…정확도도 떨어져"
최근 포털 '다음'의 응원 페이지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해 여당인 국민의힘이 인터넷 댓글에 접속 국가 표기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댓글 국적 표기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해당 법안이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작성자의 국적 파악 등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기술적 문제도 있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포털 여론 조작 의혹과 관련해 "포털에서의 여론조작은 다른 언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유권자인 국민의 눈과 귀를 속여 잘못된 선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국기 문란에 해당하는 중범죄"라며 "댓글 국적표기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내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해 댓글 조작이나 여론조작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가 지난 1월 발의한 '댓글 국적 표기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이용자가 온라인 댓글을 달 때 접속 국가와 다른 국가로 우회 접속을 했는지의 여부를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이용자의 서비스 이용 및 접속 장소를 기준으로 국적(국가명)을 함께 표시해야 하고, 실제 접속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를 통한 우회 접속 여부도 함께 명기해야 한다. 또한, 제공자가 이를 위반할 경우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댓글 국적 표기법 등 관련 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원내대표는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 법안을 반대하고 있지만, 댓글 등을 통한 여론조작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민주주의 그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는 기업들도 더 이상 책임을 방기하지 말고 관련 데이터를 정부와 공유하고 대책 마련에 협조해야 한다. 야당도 이런 사안의 위중함을 감안해서 관련 조사와 논의에 적극 참여해 주시고 국익의 관점에서 필요한 입법에도 적극 협력해달라"고 촉구했다.
앞서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도 지난달 이용자의 정보통신서비스 이용 및 접속 장소를 기준으로 국적(국가명)이 표시되도록 기술적 조치를 취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기술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엔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명시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도 이와 관련해 추가 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여당이 댓글 국적 표기법 입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등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기술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이유 등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 과기정통위 수석전문위원은 지난 5월 김 대표가 발의한 해당 법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서 "개정안이 시행되는 경우, 이용자로서는 작성자의 특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표현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제공자로서는 이용자의 이용 및 접속 장소 기준 국적(국가명)을 파악하는 것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며 "이를 표시하지 않은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업의 자유를 제한할 우려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아울러 "개정안이 시행되는 경우 작성자의 실제 국적과 접속지 기준 국가명 사이의 불일치로 인해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우회 접속하는 경우 작성자가 임의로 표기되는 국적(국가명)을 조정할 수 있어 개정안이 의도하는 건전한 여론 형성에 오히려 역행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업계 또한 비용과 정확성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우회 접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IP 주소를 수집 및 분석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추가적인 기술적 장치와 막대한 비용 투입이 요구된다"며 "IP 주소 기반 판단이 정확도가 떨어져 부가통신사업자도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을 지낸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사실은 지금도 IP 주소를 통해 어느 나라인지를 대충 알 수 있고, 국가명으로 전환해서 보여주는 건 가능하다"면서도 "(사용자가) 여러 나라를 경유할 수 있기 때문에 출발점의 주소가 맞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정말로 조작을 하고 싶은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출발 국가를 숨기고 경유로 우회해서 올 것"이라며 "정상적으로 댓글을 쓰는 사람들의 국가는 밝혀지고, 오히려 안 그런 사람들은 그냥 경유지(우회) 국가 표시가 나올 수 있어서 걱정된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실효성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