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시가 내년부터 ‘획기적인’ 조치에 나선다.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금 폭탄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히 뉴욕시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차지하는 건물이 타깃이다. 2만5000제곱피트 이상의 주거·상업용 건물주는 2005년 대비 75%를 초과한 탄소배출량에 대해 메트릭톤당 268달러를 토해내야 한다. 최대 수십억 원의 벌금 딱지가 날아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을 2030년 40%, 2050년 80% 감축한다는 과감한 목표에 따른 일종의 충격요법인 것이다.
‘획기적인’ 조치는 큰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지만, 반발이란 리스크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회피 욕망이 생존 욕구와도 같다는 세금을, 그것도 징벌적으로 물리는 정책이 환영받을 리 없다.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해 일으킨 ‘보스턴 차 사건’이 불씨가 돼 독립까지 이뤄낸 미국 아니던가. 대내외 환경도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논리가 먹혀들 만큼 우울하다.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뉴욕 출장길에서 느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갓 지어진’ 원월드트레이드센터(WTC1), 원밴더빌트(One Vanderbilt) 등 뉴욕을 대표하는 초고층 건물들은 ‘친환경’을 떼놓고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건축을 주도한 이들에게선 자부심마저 엿보였다. 과세를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간다는 느낌은커녕 최첨단 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이들이 시장을 선도하는 느낌이었다. 미국 특유의 ‘프런티어정신(개척정신)’이 풍겼다.
취재차 만난 뉴욕 탈탄소 정책 전문가에게 다짜고짜 탄소세 폭탄 반발은 없냐고 물은 이유였다. ‘획기적’ 정책이 몰고 온 반발, 이를 밀고 나가는 뉴욕시의 배짱에 관한 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첫 마디부터 예상이 빗나갔다. 그는 “뉴욕시가 준비한 세월만 얼추 20년이 넘는다”고 했다. 파리기후협정 이전부터 고민이 시작됐고, 이를 정책적 차원에서 풀어내기 위한 긴 여정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탄소배출 관련 사망자가 증가하고 에너지 빈곤도 겪다보니, 기후가 곧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게 됐다. 경제성만으로 반대하지 못할 사회적 담론이 깊게 뿌리내린 것이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친환경 건물에서 살고 일하는 걸 중요한 권리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를 제공해주는 기업, 건축가, 건물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뉴욕시에서 추진하는 정책은 후퇴하지 않는다는 점도 시민들에게 신뢰를 줬다. 뉴욕시장의 권한이 세다 보니, 바뀐 정권 입맛에 따라 정책이 휘둘릴 가능성이 적다는 얘기였다. 환경 자체도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뉴욕의 민간 상업용 전기요금은 전국 평균보다 최대 50%가량 비싸다. 벌금이 아니어도 어차피 부담이 크니, 건물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투자가 그렇게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던 것. 여기에 정부가 지원까지 해준다니 버틸 이유가 없다. 뉴욕시의 ‘획기적인’ 조치는 사실상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성공의 토대를 마련한 ‘기획된’ 정책이었던 셈이다.
한국은 어떤가. 건물 온실가스 감축 견인을 위한 제도 도입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뉴욕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과정은 달랐다. 정책을 밀고 나갈 지자체엔 권한이 없고, 이를 움켜쥐고 있는 중앙부처엔 의지가 없다. 건물 에너지 사용 관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평가 기준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진척이 좀 있나 싶으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망친다’는 여론에 휘둘려 중단되기 일쑤였다. 관련 법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기요금은 에너지효율을 높여야 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싸다. 시장 논리를 무시한 채 공공요금 가격을 억누른 탓이다. 과거 정권은 정치적 이유로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도 전기요금을 계속 동결시켰다. 유인책도, 일관성도, 담론도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다.
뉴욕 출장길 동행기자단 간담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탄소 저감에 ‘획기적인’ 방법은 없다”며 시민들의 동참이 절실하다고 했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기 위해 획기적인 정책을 쓰다보면 시민들의 반발이 불가피하다는 고충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나 인기가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 ‘획기적인’ 정책을 도입하는 배짱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게끔 사회를 변화시켜 결국 ‘획기적인’ 정책의 목표를 이뤄내는 리더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