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기업·정부 등 우리나라 모든 경제주체가 ‘ 빚의 덫’에 걸렸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자금에 몰리던 가계는 은행 대출규제에 숨통이 트이자 앞다퉈 돈을 빌리고 있고, 기업은 채권 발행보다 돈 빌리는 게 낫다고 판단해 은행에 손을 내밀고 있다. 정부도 채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가 올해 한국은행에서 돈을 꾸고 지급한 이자만 1500억 원에 달한다.
12일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2조4000억 원 늘었다. 제1금융권인 은행권에서 4조9000억 원 증가했지만 제2금융권인 비은행권에서 2조5000억 원 감소하면서 증가폭을 상쇄한 수치다.
제1금융권 대출 증가폭이 좁혀지고, 제2금융권 대출은 마이너스(-)로 전환했다는 것은 빚의 굴레에 더 얽매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은행권의 우량 고객에서 이탈한 대출 수요자들이 비은행권으로 이동하고, 기존 비은행권 수요자들은 제3금융권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이 마이너스로 전환했다는 것은 기존에 안고 있던 비우량 고객을 새로운 고객(상대적으로 우량한)으로 대체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가운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은 6조1000억 원(잔액 833조9000억 원) 늘었다. 2009년 6월 통계 속보치 작성 이후 9월 기준으로 두 번째로 큰 폭이다.
기업대출은 9월 기준으로 가장 많은 돈(11조3000억 원)을 빌렸다. 회사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보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달 기업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8000억 원 감소했다. 기업대출 가운데 중소기업 대출은 6조4000억 원 늘었는데, 잔액 규모가 994조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다음달에 대출 잔액 규모가 1000조 원을 웃돌 가능성도 있다.
정부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한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대(對)정부 일시대출금·이자액 내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 말까지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일시 대출해간 누적 금액은 총 113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현재 일시대출금을 모두 상환했지만 이 기간 정부가 한은에 지급한 이자 규모만 1497억 원이다.
윤옥자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가계대출 증가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택 경기 상황”이라며 “주택 자금 수요가 이제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10·11월 자금 대출 증가 규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정부에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관리하기 위해 이제 여러 조치를 내놓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