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우문현답] 맹신도 불신도 금물인 통계

입력 2023-10-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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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정부 부동산 통계조작 드러나
操作·造作 사이 경계 모호하지만
‘좋은 통계’로 국민 신뢰 쌓아야

“통계는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불신해서도 안 된다.” 대학 시절 사회통계 담당교수로부터 들은 첫 교훈이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사실 또한 명심하라”가 뒤를 이었다.

전 정부 시절 부동산 가격 및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 전방위적 통계 조작(造作·manipulation)이 있었다는 감사원 보고서를 둘러싸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하다. 이를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 통계는 조작(操作·operation)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양적 자료를 다루는 연구자들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양한 변수를 통제해보고 설정된 범주를 조율해본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는 순간, 연구자 입장에서 느끼는 희열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한데 통계의 조작(操作)과 조작(造作) 사이 경계가 두부 모 자르듯 분명하지도 선명하지도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덕분에 이번 정치권 공방도 “다툼의 여지가 큰”(요즘 판사의 단골 멘트처럼) 만큼, 내로남불 수준에서 상대편 흠집내기 아니면 슬그머니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통계 전문가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이, 전임 대통령 홀로 자기방어에 나서고 있는 모습도 모양새가 썩 좋은 건 아니다.

실제로 1980년대 전국 규모의 통계청 자료를 분석하면서 마르크시스트 사회학자는 한국사회에서 계급 양극화가 진행되었다고 분석했고, 에릭 올린 라이트(1947~2019) 모델을 활용한 사회학자는 중산층이 두터워짐으로써 민주주의 기반이 확고해졌다고 결론지었다.

동일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해석도 이럴진대, 전임 대통령의 페이스북 방어 시 기왕이면 좌파 성향이란 평가를 받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보다는, 공신력 있는 국가 기관이나 연구기관 자료에 근거해 반박했더라면, “정책적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다”는 본인의 아쉬움을 달래는 데 보다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국민 입장에서 진정 아쉬운 대목은 따로 있다. 이번 감사원 보고서의 미션이 전임 정부가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통계 조작을 감행함으로써 국민 고통이 심화되었음을 입증하는 데 집중됨으로써, 정작 “좋은 통계”와 “좋은 정책” 사이의 건설적 관계에 대한 공론이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소득 불평등 통계는 부끄러운 흑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유엔이나 ILO 등의 데이터를 활용한 국가 간 비교연구 시, 한국 사례는 ‘통계적 아웃라이어(statistical outlier)’라 해서 각주에 따로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국 정부가 발표하는 불평등 지수는 신뢰도가 떨어지기에, 한국 통계수치가 회귀방정식에 포함되는 순간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곤 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부동산 통계만 해도 2022년 12월 전국 기준 매매가는 -1.98%, 전세가는 -2.42%라는 수치가 발표되었는데, 일주일이 멀다 하고 거래가격이 수백만 원부터 수억 원씩 널뛰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겐 별 감흥이 없는 숫자다.

국민적 관심사인 사교육비 및 저출생 관련 통계도 조악하긴 마찬가지다.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가 1인당 월평균 41만 원으로 2021년 36만7000원 대비 11.8% 증가했다는 통계청 발표는, 학부모 억장만 무너뜨릴 뿐, 누구에게도 별 도움이 안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출생 통계만 해도 합계출산율 이외에 부부의 소득수준별, 직업별, 교육정도별, 지역별, 양육보조자 유무별, 종교별, 가족형태별 등에 따른 출생률 차이나 혼외 출생률이 궁금한데, 이를 다룬 전국 규모의 데이터는 발표된 적이 없다.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안 되고 있는데, 문제 해결을 위한 유효한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차제에 조작(操作)이냐 조작(造作)이냐 공방을 넘어, 국가 통계의 신뢰를 기반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을 생생히 포착할 수 있는 방안을 숙고해보고, 나아가 “좋은 통계”에 부응하여 “좋은 정책”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공고히 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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