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예산정책처 "R&D 예산 삭감, 투자 축소 우려…재검토해야"
국정감사가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면서 국회는 31일 정부의 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예산 정국'에 돌입한다. 정부·여당은 내년도 예산안이 재정 건전화 기조 속에 적절히 마련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가급적 '원안 통과'를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연구·개발(R&D),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새만금 예산 등의 증액을 주장하고 있어 여야 간 대치가 예상된다.
30일 국회 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31일 직접 국회를 찾아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협조를 구하는 시정연설을 한다. 앞서 정부는 대폭 감소한 세수 여건과 재정수지 적자 악화 등을 고려해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 본예산보다 2.8% 늘어난 656조9000억 원 규모의 '긴축 예산'으로 편성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이 건전재정 기조하에 약자복지 실현 등을 중심으로 편성됐음을 강조하며 가급적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정부가 고심 끝에 만든 예산인 만큼 가급적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켜달라고 국회를 부지런히 다니면서 설명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는 최근 대폭 삭감돼 논란이 됐던 R&D 예산의 증액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에 따르면 내년 R&D 분야 예산은 올해(31조778억 원)보다 5조1626억 원(16.6%) 줄어든 25조9152억 원으로 편성됐다.
여당에서는 정부가 삭감한 R&D 예산에 대해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언석 의원은 24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그동안 국회 심사 과정에서 R&D 예산은 상당 부분 증액이 이뤄져 왔다. 이번에도 상당 부분 증액에 대한 요구가 있을 것"이라며 "여야 간의 협의를 통해, 또 정부의 동의를 얻어서 필요한 사업에 대한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우리 당에서도 뒤처지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R&D 예산안에 대해 투자 축소 등을 고려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예정처는 30일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보고서에서 "2024년 R&D 분야 예산안은 과거의 점진적인 증가 추세와 달리 전년 대비 급격히 감소했다"며 "이는 연구 현장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민간기업의 대응투자 축소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적절성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정처에 따르면 1486개의 R&D 계속사업 중 54.7%인 813개 사업은 전년 대비 감액됐고, 50% 이상 감액된 사업이 R&D 사업의 39.2%를 차지했다. 90% 이상 감액된 사업도 34개에 이르렀다. 예정처는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R&D 투자 방향에 대한 논의와 함께 조기종료 또는 축소된 R&D 사업의 추진 필요성 및 적정 규모와 신규 R&D 사업의 추진 타당성 및 필요성, 시급성 등을 보다 면밀히 살펴 R&D 예산을 적재적소에 배분함으로써 R&D 예산의 실질적 합리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야당은 R&D 예산과 더불어 지역사랑상품권,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등의 예산을 증액하는 등 예산안을 전면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이 없는 '경제 포기' 예산, 정부 실패를 국민에게 전가하는 '국민 포기' 예산, 청년·여성·노인·자영업자·중소기업을 방치하겠다는 '국민 방치' 예산"이라며 "민주당은 국민과 민생을 원칙으로 정부 예산안을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인 김성주 의원은 29일 기자간담회에서 "R&D 예산 수립은 과학기술기본법에 정해진 기본절차와 시한을 지키지 않은 불법과 함께 예산 재검토도 졸속으로 밀실에서 이뤄졌다"며 "각 상임위 예비 심사 단계에서 삭감된 예산에 대해서 공동으로 대응하면서 꼭 필요한 R&D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외에도 내년도 예산안에서 빠져 전액 삭감된 지역사랑상품권과 새만금 개발 관련 예산을 복원하겠다고 언급했다.
국회 예결위는 내달 1일 예산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시작으로 예산 심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예결위는 3·6일 경제 부처 관련 예산심사와 7·8일 비경제 부처 예산심사를 거쳐 9·10일 종합 정책질의를 하고, 13일부터는 각 상임위의 소위원회에서 소관 부처 예산안에 대한 감액, 증액 심사를 거칠 계획이다.
여야는 헌법상 의결 기한인 12월 2일까지 예산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지역사랑상품권 등 예산을 놓고 이견이 커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12월 9일까지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어려울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에도 예산안이 2014년 국회 선진화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회기를 넘겨 처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