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인천 서구의 한 사우나에서 살아 있는 빈대 성충과 유충이 발견되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어 대구의 한 사립대 신축 기숙사에서도 빈대에게 물렸다는 학생들의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됐습니다. 부천의 한 고시원에서도 빈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빈대는 수십 년 전만 해도 익숙한(?) 해충이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주거환경 및 공중위생이 개선되면서 부터 빈대는 우리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죠.
사실 빈대는 끈질기고 고통스러운 흡혈 해충입니다. 사람을 무는 데다가, 모기 물린 자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린 자리가 가렵고 따갑죠. 더군다나 성충은 무려 9~18개월을 살 정도로 수명이 깁니다. 무엇보다 ‘방제’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빈대가 나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계심을 키우고 있습니다. 30일 채널A에 따르면 한 민간 방역업체는 이번 달에만 서울 25개 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개 구에서 총 24건의 빈대 방역 작업을 벌였다고 합니다. 빈대가 출몰한 장소는 고시원과 가정집이 대부분이었다는데요. 서울에서도 빈대 신고가 나오면서 서울시는 빈대 예방 및 관리 안내서를 만들어 구청 등에 배포하고 선제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40년가량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혔던 빈대가 다시 출몰하는 이유는 뭘까요? 빈대를 예방하고 퇴치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정리해봤습니다.
빈대는 납작한 타원형 몸통에 6~9㎜의 작은 크기입니다. 동물의 피를 빨아 먹는 흡혈 해충인데요. 모기보다 7~10배 많은 피를 빨 수 있습니다.
사람이 빈대에게 물리면 주변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르게 됩니다. 모기가 한 자리를 집중적으로 문다면 빈대는 여러 번 피부를 무는데요. 눈이 없어 혈관을 찾지 못하는 탓에 흡혈이 쉬운 부분을 찾으려고 피부 위를 이동하면서 여러 번 피부를 무는 겁니다. 이에 빈대에 물린 자국을 살펴보면 팔이나 발끝을 시작으로 직선이나 둥근 모양으로 물린 자국이 남죠. 빈대에 물리면 며칠 이상 심한 가려움증을 겪을 수 있는데요. 경우에 따라선 알레르기로 인한 물집이나 두드러기까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빈대는 야외가 아닌 실내에 사는 곤충으로, 따뜻한 환경에서 왕성하게 서식합니다. 암컷 빈대는 몇 달 동안 살면서 한 100개에서 200개 정도 산란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요즘 날씨가 추워지면서 가정마다 난방을 시작해 20도 이상의 실내 온도를 유지하고 있을 텐데, 이는 빈대가 서식하기 가장 좋은 온도입니다. 난방을 안 한다고 해서 빈대가 죽는 것도 아닙니다. 빈대는 10도 이하로 온도가 떨어지더라도 성장이나 부화에 어려움만 있고, 죽진 않습니다.
빈대는 주로 침대, 소파에 숨어서 생활합니다. 흡혈해야 해서 사람과 접근이 쉬운 곳에서 숨어 사는 건데요. 영어로 침대 벌레(bedbug)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개체군이 형성되면, 이른 새벽녘에 사람 피를 빨아 먹고 다시 서식처에 숨어들죠. 그런데 개체 수가 많아져 밀도가 높아진다면 침대를 벗어나 다양한 곳으로 은신처를 옮길 수 있는데요. 커튼이나 액자 뒤, 리모컨, 심지어는 콘센트 안에서도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까지 빈대가 옮기는 전염병은 보고된 바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양을 흡혈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엔 고열과 빈혈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장기 어린이는 특히 더 심한 빈혈증을 유발할 수 있는데요. 극심한 가려움으로 과하게 긁으면 염증이 생길 수도 있죠.
최근 국내에서 발견된 빈대는 해외에서 유입된 개체로 추정됩니다. 출몰 장소 대부분이 외국인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졌는데요. 김주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최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내국인이 해외를 방문했다가 귀국할 때 아니면 외국인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보통 여행 가방이나 이삿짐 등과 함께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습니다.
실로 영국, 프랑스 등은 빈대로 일찍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영국 언론들은 올해 8월 “빈대 대유행(Bedbug Epidemic)이 영국을 휩쓸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빈대는 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아니지만,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전염병 유행에 사용하는 단어(Epidemic)를 사용한 겁니다. 글로벌 최대 방역 업체 렌토킬은 올해 영국의 빈대 수가 지난해보다 65% 늘었다고 밝혔죠.
프랑스 파리에서도 최근 빈대가 확산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처도 나섰습니다. 파리 내 학교, 기차, 병원, 영화관 등에서 빈대 신고가 잇따랐는데요. 특히 학교 17곳에서 빈대가 발견돼 7곳이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프랑스에서도 빈대 발생 건수가 지난해보다 65%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죠.
렌토킬은 코로나 체제가 종식되며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이 증가하고 대학교 기숙사가 재개된 점을 빈대 확산의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빈대가 이동하는 사람들을 주요 경로로 삼는다는 거죠. 최근 과학 매체 내셔널지오그래픽은 “파리를 방문한 누구라도 이 ‘흡혈 히치하이커’를 집으로 데려갈 수 있다. 만약 빈대를 완벽히 피하고 싶거든 숲속 오두막을 사서 절대 나오지 않고 숨어있어야 할 것”이라면서 빈대의 놀라운 이동 능력을 강조했습니다.
또 가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중고 가구 거래가 늘어난 것도 일반 가정에서 빈대가 증가한 원인으로 분석되는데요. 여기에 빈대가 DDT 등 강력한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데다가, 빈대 포식자였던 바퀴벌레 개체 수가 줄어든 점도 빈대 확산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빈대는 박멸이 쉽지 않기에 애초에 집에 들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해외여행을 다녀왔거나 숙박시설을 이용한 후에는 가방을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다. 짐 속에 빈대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가방을 화장실 등에서 확인하면서 빈대의 흔적을 찾은 후 짐을 푸는 걸 추천하는데요. 세탁할 수 없는 물건은 비닐봉지에 담고 가정용 에어로졸(살충제)을 분사한 뒤 비닐을 묶어 밀봉한 상태에서 2~3일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 해외에서 배송받은 택배 상자는 집 밖에서 개봉하고 내용물만 집 안으로 가져오는 게 좋습니다.
빈대는 열에 약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45~50도의 열을 가하면 죽는다고 합니다. 나도 모르게 빈대를 옮겨 왔다면 즉시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옷과 소지품은 50도 이상에서 세탁·건조해야 합니다. 뜨거운 증기를 활용한 스팀 소독도 효과적인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사실 가정용 기기로는 즉각적인 방제 효과를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반적인 스팀 다리미로는 이불이나 매트리스 등에 열이 깊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죠. 이에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해 물건이나 틈 사이에 뜨거운 바람을 쐬어주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미 빈대가 집에 퍼졌다면 즉시 전문 방역 업체를 부르는 게 좋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빈대는 콘센트 틈 사이처럼 좁디좁은 공간에도 들어가 살 수 있습니다. 이에 빈대를 발견한다면 신속히 대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만약 빈대에게 물렸다면 우선 물과 비누로 씻어내고, 증상에 따른 치료법과 의약품 처방을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빈대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커지자, 질병관리청은 내일(1일)부터 공항 출국장, 해외 감염병 신고센터에서 프랑스, 영국 등 빈대 발생 국가 출입국자와 해당 국가에서 화물을 수입하는 수입기업을 대상으로 해충 예방수칙을 안내하기로 했습니다. 해외 유입 동향을 파악해 위생 해충 예방 홍보 대상 국가를 수시로 조정하고, 빈대 등 해충의 유입을 차단하는 검역소 구제 업무를 강화할 계획인데요. 빈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대처할 수 있는 ‘빈대 예방·대응 정보집’도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