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확인’된 경우와 ‘거명’된 경우 달라
유족인지 증명되는 등본상 기록도 중요
6·25 당시 치안대에 살해된 ‘충남 민간인 희생사건’의 유족 58명이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단 1명에게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최규연 부장판사)는 최근 국가배상법을 들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이 사건 원고 58명의 청구 대부분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국가를 상대로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에서는 개별 당사자가 진짜 사건의 희생자가 맞는지 조사보고서 해당 부분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등 증거에 의해 확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충남까지 들이닥친 인민군이 당진군, 홍성군, 서산시, 예산군을 점령했고 두 달여 만인 9월 국군이 이 지역을 되찾았다.
이때 국군과 경찰의 지휘·감독을 받던 치안대가 일부 주민을 부역 혐의, 좌익활동혐의로 재판 같은 적절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집단 살해했다.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사해 희생자를 분류했고, 최근 원고들은 이 사건으로 자신의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 등 가족이 무고하게 숨졌다며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보고서에서 사건과 시대 상황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개괄을 정리한 부분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원고들의 주장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증명할 만한지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희생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경우(희생확인자)와 희생됐다고 ‘거명’됐지만 그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희생거명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희생 사실이 확인된 경우는 일시, 장소, 시신 수습 여부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진술한 사람이 3명 이상 있었거나 당시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죽은 것으로 안다”, “희생된 것으로 안다”는 식의 들은 내용만 진술돼 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희생이 ‘거명’되기만 한 경우에는 그 유족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희생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고 해도 원고가 진짜 유족인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봤다. 희생자의 호적상 이름과 유족이라고 주장하는 원고의 선대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고는 이에 “호적 이름과 일상 생활에서 이름을 달리 썼다”는 내용의 인우보증서(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이 특정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를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인우보증서를 작성한 자들이 1948년생, 1949년생, 1950년생으로 사건 발생 당시 1~3세 갓난아이에 불과해 희생자가 실제 사용한 이름이 무엇인지 직접 알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고 봤다.
모든 인우보증서의 글씨체가 똑같아 당사자들이 직접 기재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번 사건에서 위자료 지급을 인정 받은 원고는 단 1명이다. 희생자인 형에 대한 위자료 8000만 원과 그 가족 앞으로 지급됐어야 할 위자료 1360만 원을 합친 9360만 원을 받게 된다.
재판부는 해당 원고의 경우 1950년 10월 희생된 자의 남동생이라는 사실이 등본상으로 증명된다는 점, 원고의 형으로 등본에 올라있는 자의 사망일이 1950년 10월로 기재돼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