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6개 경제단체가 어제 공정거래위원회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의 위반행위 고발에 관한 지침’(고발지침)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해 달라고 건의했다. 최근 고발지침 행정예고 후 비판 의견서를 냈던 6개 단체가 거듭 의견을 수렴해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기업 현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절박한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달 19일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로 사업자(법인)를 고발할 경우 특수관계인(총수 일가)도 원칙적으로 포함하도록 하는 고발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일감 몰아주기는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이 20%가 넘는 계열사가 발행 주식의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에 계약을 몰아줘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혐의로 법인을 고발할 때 총수 일가를 함께 고발하는 것은 지금까지는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 가능했다. ‘원칙적으로’ 함께 고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접근이 된다. 오너 고발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쉬워지는 것이다.
6개 단체는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로 “특수관계인이 사업자에게 사익편취를 지시하거나 관여해야 하고 그 위반 정도가 객관적으로 중대·명백한 경우에만 고발하도록 규정한 상위법(공정거래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었다. “공정위의 전문적 판단하에 검찰에 고발하라는 전속고발권 취지에 반한다”고도 했다. 공정위의 합당한 해명이 필요하다.
공정위 고발지침은 공정거래법에 근거를 둔 일종의 하위 규범이다. 공정거래법 제129조는 “위반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한 경우에 한해 행위자를 고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47조는 특수관계인이 시장 경쟁 질서를 상당히 해쳐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할 경우 고발할 것을 요구한다.
공정위는 개정 사유로 “(임의)조사만으로 특수관계인의 관여 정도를 명백히 입증하기 곤란해 고발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밝힐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범죄 구성의 필수 요건인 고의성 여부에 대한 확인 절차도 없이 기업 오너와 일가를 무차별 고발하겠다는 무책임한 발상이다.
공정위는 또 생명·건강 등 안전에의 영향, 사회적 파급 효과, 국가재정에 끼친 영향, 중소기업에 미친 피해 중 어느 하나가 현저한 경우에도 고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역시 무책임한 감이 짙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정부의 경제형벌 완화 약속에 동참했다. 자가당착이 아닌가. 과감한 규제 혁신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국정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공정위는 논란이 번지자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특수관계인의 관여를 직접증거 외에 간접·정황증거를 통해서도 인정한 최근 대법원 판결 취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정거래 사건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중대한 행정예고 이유로 개별 판례를 드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묻게 된다. 궁색한 변명은 해답이 아니다. 전면 재검토가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