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기초연금 폐지, 국민연금 최저연금 도입은 어떨까

입력 2023-11-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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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열린 연금연구회 2차 세미나에서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과대학 교수가 제안한 국민연금 ‘3115’ 개혁안이 화제가 됐다. 보험료율을 3%포인트(P) 인상하고, 부족분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재정 투입과 기금운용 수익률 1.5%P 제고로 충당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3115 개혁안을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김 교수의 개혁안이 채택되진 않았지만, 당시 연금특위 내 많은 전문가가 개혁 방향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의 개혁안이 관심과 지지를 얻은 건 단순히 새롭기 때문이 아니다. 개혁안의 이면에는 재정수지뿐 아니라, 국민연금제도의 고질적 문제들이 응축돼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개혁 미룬 건 정부·국회, 책임은 가입자가?

첫째, 재정 투입의 적정성이다. 마지막 국민연금 개혁은 2007년이다. 이후 20년간 개혁이 미뤄지고 있다. 기금 소진이 앞당겨지고 부과방식 비용률이 오른 결정적인 배경은 개혁 지체다. 연금 재정 악화를 보험료율 인상만으로 해결하겠단 건 그간 개혁을 미뤄 문제를 키운 국회와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정부의 책임성 차원에서 재정 투입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일각에선 재정지출 증가에 따른 ‘국가부도’ 위기론까지 나온다. 그런데, 그렇게 국가부도를 우려하는 이들도 기초연금을 없애자곤 하지 않는다. 기초연금 지출은 지난해 20조1000억 원, 올해 22조6000억 원이다. 노인(65세 이상) 인구 정점인 2050년에는 수급자만 1330만 명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면 기초연금액을 올해 수준(32만3000원)으로 계산해도 연간 51조5580억 원이 지출된다. 연금액이 40만 원으로 오르면, 연간 지출액은 63조8400억 원으로 는다. 지난해 기준 GDP의 1%는 약 20조 원이다. 국민연금에 20조 원을 투입하는 게 국가부도라면, 기초연금에 올해 22조6000억 원, 27년 뒤 63조8400억 원을 쏟아붓는 건 국가파산이 아닌가.

◇고소득 가입자가 저소득 가입자 보험료 대납

둘째, 소득재분배기능의 적정성이다. 국민연금 급여액은 소득재분배급여(A급여)와 소득비례급여(B급여)로 구분된다. 총급여액은 A값(가입자 전체 평균소득월액 평균액)과 B값(가입자 개인 가입기간 중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편의상 A값을 200만 원이라고 본다면(실제 A값은 2023년 286만1091원),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이 100만 원인 가입자는 150만 원을, 400만 원인 가입자는 300만 원을 기준으로 연금액이 산정된다. 40년간 보험료를 내면 100만 원 가입자는 소득대체율 40%를 기준으로 본인이 받아야 할 연금액(40만 원)보다 20만 원 많은 60만 원을 받고, 300만 원 가입자는 받아야 할 연금액(160만 원)보다 40만 원 적은 120만 원을 받는다. 명목소득대체율은 40%지만, 실질소득대체율이 100만 원 가입자는 60%, 400만 원 가입자는 30%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소득 가입자가 저소득 가입자의 보험료를 대납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두고 보험료율만 인상하면 고소득 가입자는 내는 보험료보다 받을 연금급여가 줄어들게 된다.

보험료율을 인상하지 않더라도 이런 구조는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크다. 통상 소득재분배기능은 조세제도를 통해 작동한다. 고소득자가 낸 세금이 공적부조·사회복지 형태로 저소득자에게 분배된다. 연금제도 내 소득재분배는 고소득 가입자에게만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다.

◇단계적 기초연금 폐지, 아낀 재정 국민연금에 투입

이런 문제들을 고려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연금에 재정을 투입할 필요는 있다. 관건은 돈을 어디서 끌어오느냐다. 여기에선 보험료율 12% 인상, 최저연금 도입을 전제로 국민연금 소득재분배기능을 폐지하고, 기초연금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식을 제안해본다.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에 참석한 노동계 위원이 연금개혁에 대한 항의 피켓을 올려두고 있다. (뉴시스)

보험료율을 12%로 인상하면 최저 보험료는 현재가치(이하 동일)로 월 12만 원(기준소득월액 100만 원)이다. 소득대체율 40%를 B값 기준으로 개편(A급여 폐지)한다는 전제로 보험료를 월 12만 원씩 40년간 내면 급여액은 월 40만 원이 된다. 이를 최저연금으로 놓고 정부가 최저연금 조건에 미달하는 보험료 차액을 지원하면 산술적으론 기초연금보다 적은 돈으로 기초연금보다 많은 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

가령, 국민연금에 가입한 적 없는 사람에게 월 12만 원씩 40년간 보험료를 지원한다면 총 5760만 원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적 있는 사람에겐 더 적은 비용이 든다. 반면, 같은 사람에게 20년간 기초연금을 월 40만 원씩 지원한다면 총 9600만 원이 필요하다. 똑같이 월 40만 원을 주는데 비용이 달라지는 건 기금과 일반재정 차이에 기인한다. 월 12만 원씩 40년간 보험료를 내면, 연평균 기금운용 수익률이 4% 이상만 유지돼도 연금 수급 시점에 원금과 수익금 합계가 1억 원을 넘는다.

이런 방식은 고소득자에게도 이익이다. 소득재분배 역할을 정부가 수행하게 돼서다. 본인 소득이 A값보다 높단 이유로 연금급여가 감액되지 않는다.

단, 기초연금 단계적 폐지가 전제돼야 한다. 방식은 간단하다. 매년 수급 개시 연령을 1세씩 높이면 된다. 신규 노인은 기초연금을 못 받는 대신 국민연금 최저연금 수급자가 되므로, 세대 간 형평성 문제는 없다. 재원으로는 기초연금 수급자 축소로 절감된 재정을 활용하면 된다. 단기적으론 연금 수급 연령에 임박한 미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지원하느라 추가 지출분이 절감분보다 크지만, 장기적으론 절감분이 지출분보다 커진다. 평균수명을 고려할 때, 노인 인구가 정점에 이르는 2050년엔 기초연금 지출 절감분만 50조 원을 넘어서게 된다.

꼭 이 방식이 옳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렇게라도 의견을 제시해보는 게, 연금 개혁 논의가 아예 없는 상황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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