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사건·사고들을 일종의 ‘징크스’로 여기는 시선도 있습니다. 바로 이달이 ‘11월’이기 때문인데요. 사실 연예계에는 11월만 되면 흉흉한 소식이 들려온다는 ‘11월 괴담’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괴담에 불과하지만, 매년 11월이면 연예계에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지면서 ‘11월 활동은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죠.
괴담의 역사는 상당합니다. 무려 50년을 훌쩍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데요. 이 괴담, 대체 언제 시작된 걸까요? 11월 괴담의 시초로 불리는 사건부터 최근 연예계 모습까지 살펴봤습니다.
11월 괴담이 널리 알려진 건 2000년대 초반인데요. 이미 연예계에서는 80년대부터 돌던 소문이라고 합니다. 11월에 세상을 떠난 유명 연예인들이 많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괴담은 일파만파 확산했죠.
11월 괴담의 시초로 거론되는 건 1968년 가수 차중락의 사망입니다. 밴드 키보이스 리드보컬 출신 차중락은 수려한 외모, 건장한 체격, 감미로운 목소리로 60년대를 풍미했는데요. ‘철없는 아내’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동양방송(TBC)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사랑의 종말’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1967년에는 TBC 남자 최고신인가수상의 영예를 안았죠.
그러나 이듬해인 1968년 11월 10일, 차중락은 서울 동일극장 무대에서 고열로 쓰러지면서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습니다. 인기 절정을 누리던 그는 뇌막염으로 결국 사망했는데요. 사망 직전 가을 가요계를 겨냥한 ‘낙엽의 눈물’이 마지막 노래가 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죠.
안타까운 소식이 괴담의 시작으로 일컬어지게 된 건 가수 유재하가 사망하면서부터입니다. 유재하는 19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사랑하기 때문에’ 등 명곡을 남긴 젊은 천재 뮤지션의 비보에 연예계는 물론 대중도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은 계속됐습니다. 1988년 11월엔 가수 최병걸, 강병철이 사망했고, 1990년 11월엔 ‘비처럼 음악처럼’, ‘내 사랑 내 곁에’ 등 히트곡을 쓴 가수 김현식이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2세의 젊은 나이였는데요. 그가 사망한 날짜는 11월 1일로 유재하와 같습니다.
1995년 11월엔 그룹 듀스 멤버 김성재가 사망했습니다 . 당시 23세였던 김성재는 솔로로 첫 무대를 선보인 날 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요. 인기 절정의 가수가 사망하면서 대중은 또 한 번 충격을 금치 못했죠. 1999년 11월 탤런트 김성찬이 말라리아로 사망했습니다.
11월 괴담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건 2000년대 들어서입니다. 연예계의 11월 사건·사고가 부각되면서, 1년 중 특히 11월에 가장 많은 아픔과 재난이 몰린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죠.
2000년 11월에는 원조교제로 구속된 탤런트 송영창을 시작으로 배우 김승우와 이미연의 이혼, 그룹 클론 멤버 강원래의 대형 교통사고, H.O.T. 멤버 강타의 음주운전 사고 등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001년 11월엔 드라마 ‘허준’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황수정이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됐고, 가수 싸이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체포됐죠. 코미디언 양종철은 교통사고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2005년 코미디언 신정환은 불법 카지노 도박 혐의로 입건됐고, 2008년 야구선수 출신 강병규는 인터넷 도박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2010년에는 가수 MC몽이 병역 기피를 위해 고의로 발치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2013년에는 코미디언 이수근, 탁재훈을 포함해 다수의 연예인이 줄줄이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2014년에는 방송인 노홍철의 음주운전이 적발됐고, 배우 김자옥이 폐암 투병 중 사망해 대중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모두 11월에 전해진 이야깁니다.
올해도 비슷한 모습입니다. 이달 들어서만 무려 5개 커플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는데요. 2일 ‘결혼과 이혼 사이’에 출연했던 서사랑이 남편 이정환과 이혼 소식을 전했고, 4일 배우 정주연이, 6일 방송인 안현모와 라이머가 각각 이혼 소식을 알렸습니다. 방송인 박지윤, 최동석 부부도 결혼 14년 만에 이혼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배우 류준열과 혜리도 13일 결별 소식을 전했습니다. 2017년 열애를 인정하고 공개 열애를 시작한 지 6년 만의 소식에,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팬들도 안타까워했죠.
부고도 어김없이 전해졌습니다. 방송인 이상민의 모친 임여순 씨가 4일 별세했고, 그룹 신화 출신 가수 전진의 부친인 찰리박(본명 박영철)도 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8일에는 싱어송라이터 나히(본명 김나희)가 24세의 젊은 나이로 별이 돼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여기에 지난달부터 시작된 배우 이선균 등의 마약 혐의에 대한 수사도 이어지고 있고요. ‘재벌 3세’라고 알려졌던 전청조 씨와 지난달 재혼 소식을 알렸던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도 최근 전 씨의 사기에 공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바람 잘 날 없는 11월입니다.
11월 괴담이 도는 것과 관련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먼저 계절적·시기적인 특성이 괴담이 등장하는 원인으로 거론되는데요.
과거 방송과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매체는 주로 스포츠신문이었습니다. 그리고 11월은 스포츠지의 주된 기삿거리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시즌이 끝나는 시기인데요. 즉 대목을 지나 11월을 맞으면서 소재가 적어진다고 할 수 있죠.
이때 매체들은 스포츠에서 연예계로 관심을 돌리고, 그간 취재해놓은 기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는 분석이 나온 것입니다. 스포츠 대목이 지나간 11월에 연예계 소식으로 독자의 눈길을 붙잡는다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국회 국정감사와 11월이 맞물린다는 ‘음모론’도 제기됩니다. 11월은 국감이 끝나는 시기인데요. 국정 전반에 대해 감사와 감찰을 진행하고, 공개 비판이 오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혹, 실수에 대한 질의나 지적이 부각됩니다. 이에 연예계 이슈로 정치적 쟁점을 ‘덮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거죠.
연예계에 대한 괴담이 떠도는 건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미국에는 ‘27세 클럽’이라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2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뮤지션들을 일컫는 말인데요. 1930년대 유행한 장르, 델타 블루스를 완성한 로버트 존슨이 27세에 돌연 사망하면서 괴담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세간에는 ‘존슨이 악마와의 계약으로 음악적인 천재적 재능을 얻을 수 있었고, 그 기한대로 27살에 숨졌다’는 내용의 소문이 확산한 바 있죠.
롤링스톤스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부터 브라이언 존스, 록밴드 도어스의 리더 짐 모리스,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 천재라고 불리던 뮤지션들은 모두 2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 징크스를 더욱 견고히 했습니다.
특히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7세가 되기 수년 전부터 괴담에 대한 공포감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매니저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나는 27세 클럽 멤버가 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하죠.
각국 연예계에는 괴담이 파다하고, 그 역사 역시 긴 모습인데요.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개별적인 사건·사고가 우연한 연속성을 보였고, 여기에 언론 보도가 덧붙고 확산하면서 괴담으로 재생산된 것뿐이죠.
실제로 연예계에서 흉흉한 소식이 전해지는 건 11월만의 일이 아닙니다. 일례로 2019년 연예계를 강타한 ‘버닝썬 게이트’는 그해 1~3월 모든 매체를 달군 문제죠. 이선균의 마약 투약 혐의도 따지고 보면 지난달에 처음 보도됐습니다.
11월 괴담은 실체가 없는 괴담이자 낭설에 불과한데요. 다만 연예계의 흉흉한 사건과 11월을 연관 짓는 시선이 있는 한, 괴담은 앞으로도 꾸준히 떠돌 것으로 보입니다.